《반 고흐, 영혼의 편지》
외로움 그림과 영혼의 편지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빈센트 반 고흐, 신성림, 예담, 2017)
고흐가 동생과 주고받은 600여 통의 편지 중에서 40여 통과 그림들을 수록했다. 그는 살아서는 주목받지 못한 불운했던 화가이다. 권위적인 아버지로 인해 힘들었던 시절을 지냈다.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형제애로 외로움을 달랬다. 편지쓰기를 통해 동생을 위로했고 스스로도 위안을 받았다. 옛날에는 편지를 전달하는 게 불편했을 시절이다. 660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고흐는 당시에 그림 한 점 팔지 못한다. 화가가 그림을 팔지 못한다는 건 예술애호가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그의 유일한 일상은 그림그리기와 편지쓰기라고 생각된다.
목사이지만 엄격한 아버지는 고흐에게 목사가 되기를 바란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신학을 공부했지만, 그림그리기가 더 좋았다. 그러나 그가 그린 그림은 팔라지 않았다. 때문에 생활비와 그림재료비를 감당할 수 없는 고흐는 동생의 도움을 받고 산다.
연인도 없는 고흐는 외로웠을 것이다. 동생 테오에게 많은 편지를 보냈고, 친구 라파르트, 고갱과 어머니에게도 보낸다. 글을 통해서 심리적 동반자관계를 맺으려는 것 같다. 사랑하는 여인을 옆에 두지 못한 고흐는 동반자를 찾고 싶었을 게다. 그의 곁에 아무도 없을 때 얼마나 외로웠겠는가? 미국의 심리학자 대이얼 골먼(Daniel Goleman)은 《EQ 감성지능》에서 동반자들이 원활하게 작동할 때 지성과 감성지능이 상승한다고 말한다. 같이 살고 있는 동반자가 없는 고흐는 동생, 친구, 어머니와 편지로 관계를 맺어왔다고 본다.
"감옥을 없애는 게 뭔지 아니? 깊고 참된 사랑이다. 친구가 되고 형제가 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최상의 가치이며, 그 마술적 힘이 감옥 문을 열어준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죽은 것과 같다. 사랑이 다시 살아나는 것과 같다. 사랑이 다시 살아나는 곳에서 인생도 다시 태어난다. 이 감옥이란 편견, 오해, 치명적인 무지, 의심, 거짓 겸손 등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25쪽)
아버지로부터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한 고흐에게 사랑의 샘물을 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가 젊은 나이에 간질에 걸린 것도 아버지의 폭력성에 있지 않을까하는 의심이 생긴다. 꼭 아버지의 폭행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하더라도. 고흐가 사랑에 메말랐던 건 편지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겨울, 임신한 한 여자를 알게 되었다. 남자한테서 버림받은 여자지, 겨울에 길을 헤매고 있는 임신한 여자----. 그녀는 빵을 먹고 있었다. 그걸 어떻게 얻었는지는 상상할 수 있겠지, 하루치 모델료를 다 지불하지는 못했지만, 집세를 내주고 내 빵을 나누어주어 그녀와 그녀의 아이를 배고픔과 추위에서 구할 수 있었다.” (53쪽)
고흐는 그녀를 모델로 훈련시키고, 모델료를 지불하여 집세를 내주고, 빵을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그녀와 결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그녀를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녀는 다시 과거의 길, 구렁텅이로 내몰릴 것이기 때문이다. 동생에게 생활비를 얻어 살고 있는 고흐가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자에게 모델료를 주고 결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그녀와는 인연이 없었나보다.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고흐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사랑에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1. 누구를 사랑하지도 사랑받지도 못하는 상태
2. 사랑하고 있지만 사랑받지 못하는 상태
3. 사랑하고 있으며 사랑받는 상태“ (34쪽)
고호의 심리는 사랑이 갈급한 상태이다. 동생 테오와는 심리적으로 가장 가깝다. 동생이 자신을 이해하고 있다는 심리적 동반자 관계가 그림 작품에 매진하는 계기일 수 있다.
“테오가 없었다면 그림을 제대로 그릴 수 없었을 것이다. 친구 같은 레오가 있었기에 내 그림의 수준이 높아지고 모든 게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153쪽)
동생은 고흐의 그림에 관심을 갖는 그림애호가들이 많다고 축하편지를 보내어 형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줍니다.
손 편지는 마음을 이어주는 매개이다. 나 역시 아들이 군대에 갔을 때 일주일에 한 번씩 손 편지를 썼다. 아들은 대학 재학 중 입대하였는데, 힘든 훈련 중에도 편지가 기다려졌다고 한다. 자대배치를 받아 군복무를 할 때도 매주 편지를 보내주는 아버지 덕분에 선임들의 기압도 덜 받았다는 말을 들었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고 편지가 주는 무언의 힘을 느낀다. 반 고흐는 그림만 잘 그리는 게 아니라 글도 잘 썼다는 걸 알았다. 이 책을 읽고 사랑했지만 잊혀진 사람이나, 사랑하지만 표현하지 못한 누군가에게 손 편지를 쓰고 싶은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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