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삼식이 눈물의 귀거래사

수필 한 편

by 마음 자서전


직장 생활을 하다가 은퇴한 후에 무력감이 왔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런 생활을 하면서 이제 쓸모없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삼식이‘라고 부르지만 정작 삼식이가 되어보지 않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기는 하는 걸까? 웃음거리로 하는 말이지만 삼식이는 괴롭다. 젊어서는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땀 흘려 일했다. 어떤 때는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참고 직장을 다녔다. 직장에서 자존심이 상할 때도 있었지만, ’자존심이 밥 먹여주나?’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다녔다. 그렇게 다닌 직장 생활을 그만 두고 집에 틀어박혀 있는 모습을 보라. 들판을 뛰어다닐 말(馬)이 우리 안에 있는 꼴이다. 말은 달려야 한다. 달리지 않고 집에서 먹이만 축내는 말은 무슨 짝에 쓰겠는가. 양계장의 닭은 알이라도 낳는다. 늙은 닭은 쓸모가 없듯이 늙은 말은 쓸모가 없다고 내치는 꼴이 아닌가? 젊었을 때에 가족을 위해 헌신하였다는 게 평생 계급장이 될 수 없다.


우울증은 사람을 힘들게 한다.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고, 내가 앞으로도 쓸모없는 인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경제활동을 하는 것으로 가정에 기여했는데 경제활동을 못하니 그런 생각이 엄습해 왔다. 우울증을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딸이 같이 살자고 한다.

서울에 있는 딸과 합가를 했다. 딸과 같이 살면서 좋은 점이 생겼다. 손주와 있는 게 좋았다. 그래서 손주와 같이 놀아주었다. 놀이터에도 가고, 도서관에도 갔다. 손자와 둘이서 여행도 다녔다. 손자도 좋아하고 나도 좋았다. 그런 걸 육아일기로 썼다. 일기를 쓰면서 글을 잘 쓰고 싶어졌다. 글을 잘 쓰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하고, 글을 많이 써야 하고,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책을 읽었다. 손자에게 책을 읽어주고, 나도 책을 읽었다. 손주와 함께 도서관을 다녔다.

Untitled-1.jpg

손자와 같이 놀아주면서 우울증은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신과 의사는 아직도 우울증이 남아있다고 한다. 우울증은 무엇이고 왜 없어지지 않는지 궁금했다. 도서관에서 《심리학 개론》을 빌렸다. 대학교재이다. 읽기가 어려워서 진도가 안 나간다.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샀다. 아들이 선물한 테블릿pc가 있다. 그걸로 필사를 했다. 필사는 손으로 쓰는 게 좋지만 속도가 느리고 저장이 안 된다. 그래서 저장성도 좋고 속도감도 있는 pc를 이용했다.

《심리학 개론》을 읽으면서 심리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사람은 신체와 마음으로 되어 있다. 눈에 보이는 신체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나무는 줄기와 잎사귀가 눈에 보이지만, 땅속에 있는 뿌리는 땅을 파지 않으면 볼 수가 없다.

사람의 마음에도 뿌리가 있다. 마음의 뿌리가 건강해야 생각도 건강해진다. 생각이 건강해지면 행동도 건전해진다.


심리학 개론을 읽고,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심리관련 책을 많이 읽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재미가 있다. 재미있는 일을 하면 우울증이 감소된다고 한다. 작년에 딸과 분가를 했다. 평택으로 이사를 했다. 직장도 구했다. 직장은 요양원이다. 일을 하니 심리적으로도 안정이 되어간다.

심리학을 공부하기로 했다. 상담대학원에 입학원서를 냈다. 너무 나이가 많아서 공부를 따라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더 늦기 전에 한번 해보자.‘고 마음 먹었다. ’떨어지면 어떡하나’하는 염려도 들었다. 합격자 발표가 있을 때까지 며칠간 마음을 졸였다. 합격자 발표가 있는 날이다. 노트북을 열고 대학원 사이트에 들어갔다. ‘합격자 발표‘를 눌렀다. 이름과 생년월일을 입력하니 ’합격증‘이 나온다. 73세에 대학원입학이다.

DSC_4908-1.jpg

문재인대통령이 휴가 중에 읽었다는 《당신이 옳다》의 저자인 정신과 의사 정혜신 박사는 “다른 사람들을 치료해주지만 자신도 정신과 진료를 받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들은 크고 작은 ‘성격장애‘가 있다“고 한다. 나의 성격 장애는 무엇인지 나를 공부하고 나를 치료할 수 있다면 그게 가장 큰 공부일 게다.


삼식이가 흘렸던 눈물의 원인을 찾아가보고 싶다.

190204

190204-1

190205

190206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값싸고 실용적인 공동체 주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