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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 자서전 Mar 22. 2019

회피냐, 승복이냐 아니면 승화인가

  예전에는 화를 잘 냈다.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고, 손짓발짓을 하거나 물건을 부수기도 했다. 그래야 직성이 풀렸다. 화를 내면 내가 내 성에 못 이긴다. 숨이 가빠온다. 씩씩거린다. 

  유년시절 화를 내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다. 5살 때, 6‧25전쟁으로 피난을 가면서 어린나이에 볼 것 못 볼 것을 모두 보았다. 먹을 게 없어서, 남에게 물건을 빼앗겼고 입을 게 없어서 추위와 떨었다. 잠자리도 없을 때도 있었다. 전쟁 피난민은 매일매일이 생(生)과 사(死)를 넘는 나날이었다. 사람들이 악(惡)만 남았다고 하는 말도 생겼다. 

  

  전쟁은 모든 걸 빼앗아간다. 인권도 인격도 없다. 네가 죽느냐, 내가 죽느냐이다. 나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피난길에는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도 피난 중이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란 말까지 유행했다.  예절은 피난보따리 속에 넣어두었다. 마음속에는 예절이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예절을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세상이었다. 나는 그런 시대를 호흡하며 몸과 마음이 자랐다.  


  피난길에서 고생을 하며 지낸 것보다 더 힘들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내가 3학년 즈음에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5학년 때 세상을 떠나셨다. 3학년 이후론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아버지는 상점를 하셨다. 그야말로 잡화상이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슈퍼마켓이라 할까. 당시에는 제법 그 규모가 컸다. 야채, 생선, 생활 잡화를 모두 팔았다. 예전에는 쌀배급, 소금배급, 담배배급이 있었다. 배급제였기 때문에 배급소는 동네에 하나밖에 없었다. 물자가 귀한 시절이라 물건만 있으면 팔려나갔다. 종업원들을 집에서 재우고 살았다. 

  그러구러 어머니가 계시지 않으니, 아버지는 차츰 사업을 등한시하였다. 술을 마시는 날이 잦았다. 나는 종업원들과 어울리는 날이 많았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서인지 또 다른 이유가 있어서 인지 나는 젊어서 화를 잘 냈다. 아마도 애정 결핍이었으리라.  

  은퇴한 후에는 우울증이 찾아왔다.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서울에 있던 딸이 평택으로 이사를 왔다. 아빠가 외로울 것 같아서라는 게 이유였다. 나는 손자를 돌봐주고 놀았다. 놀이터에도 가고, 시장도 가고, 도서관도 갔다. 줄곧 손자들과 같이 다녔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어주었다. 책을 읽어주고, 나도 책을 빌려왔다. 

  우울증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심리학 개론》을 읽었다. 생전 처음으로 심리학을 알았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차츰 심리학에 빠져들어갔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심리학 개론》을 필사하다시피 했다. 그러다 《심리학개론》을 샀다. 이후 심리와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다. 하지만 읽어도 잘 모르겠다. 또 알았다고 해도 금방 잊어버린다. 나이가 들어 기억력도 떨어지고, 생소한 것을 내 몸에서 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나이에는 머리에 넣기 보다는 배운 걸 직접 응용할 때 내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심리학책을 읽어서인지, 요즘은 화를 내지 않는다. 화를 내지 않는다기보다는 어쩌면 회피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억압인지, 억제인지 모르겠다. 하여튼 화를 내지 않는다. 화를 내야 할 때 화를 내지 않게 되자 서서히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화를 낼 때는 불편한 마음이 잠시 머물다가 사라지지만, 크게 화를 내야 할 때에 화를 내지 못하면 오히려 불편한 마음이 오래간다. 어떤 때는 화를 내게 만든 사람과 서먹서먹해지기까지 한다. 더 심한 경우에는 그 사람과 멀어지기도 한다. 

  사진을 찍을 때에 먼 곳은 조리개를 좁히고, 가까운 곳은 조리개를 넓힌다. 조명의 밝기에 따라서도 조리개가 열리고 좁히고 한다. 우리의 눈에도 조리개가 있다. 잘 안 보일 때는 눈을 찡그리면 조리개가 좁혀진다. 어두운 곳에서는 조리개를 열고 밝은 데서는 조리개를 좁힌다. 나는 마음의 조리개, 감정의 조리개를 잘 열고 닫지를 못하는 사람 같다. 사람들에게 알맞은 감정 조리개로 사진을 쩍을 줄 모른다. 기술이 부족한 건지, 사진기가 나쁜 건지 날씨가 안 좋은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감정을 회피하는 것인가, 아니면 억제하는 것인가. 참으로 헷갈린다. 고등학생 때는 유머도 많아서 학우들을 웃기기도 많이 했는데, 지금의 내게서는 그런 유머도 사라졌다. 이제는 공부로 글쓰기로 승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승화보다 승복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마저 생긴다. 

  그나마 대학원 생활에서 나의 ‘억제‘라는 방어기제를 더 성숙한 방어기제인 승화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과연 그런 날이 오려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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