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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 자서전 Mar 21. 2019

창업하는 청년과의 만남

수필쓰기

 

  40대 때 한얼산 기도원엘 갔던 때가 있었다. 이천석목사님이 운영하던 곳이다. 그곳에서 며칠 있으면서 옆에 한 남자가 집을 샀다는 간증을 했다. 

“자신은 집이 없어서 장로님 집에 언쳐서 살았는데, 집주인인 장로님이 얼마나 모질게 대했는지 몰라요. 설음이 복받쳐 왔어요. 그런데 그 장로님에게 감사해요. 그때 장로님이 나에게 잘해주었으면 지금의 나란 존재란 미미했을 겁니다. 설음이 생길 때마다 나도 꼭 집을 가져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답니다. 그래서 집을 장만했어요. 기뻐서 기도원에 왔습니다. 장로님 덕분에 집을 마련해서 기쁘다고요.”

자신을 모질게 대한 장로님 덕분에 집 장만을 해서 장로님에게 감사하다고 말한다.

 

  현역에서 지역복지, 빈민복지와 노인복지를 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 독거노인 할머님에게 빝반찬 배달을 했었다. 갈 때마다 손에 밑반찬 주머니를 들고 갔다. 어쩌다가 그냥 찾아가도 내가 뭘 가지고 왔나하는 기대를 한다. 도와주고 나면 의존심이 커진다. 가난한 이들을 도와준다고 한 것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도록 만들 수 있다. 

복지병이란 게 있다. 물질적으로 남을 도와주는 게 잘못하면 그 사람을 복지병으로 무기력하고 의존적인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사용하지 않는 집이 있다. 그냥 방치하면 집이 더 낡을 것 같아서 세를 줄려고 수리를 했다. 아내가 교회 목사님에게 그런 말을 했더니, 교회 청년에게 빌려줄 수 있느냐고 아내에게 물었다. 우리가 그 집으로 이사를 가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세놓으려고 했다. 이 집을 세놓으면 1000만원에 50만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목사님이 말씀하셔서 청년을 만나보았다. 

보증금은 없고, 월세는 낼 수 있다고 했다. 언제까지 사용하겠느냐고 물었더니 내년 봄까지 사용한다고 했다. 그렇게 하라고 말을 했다. 그 집은 조립식 판넬로 된 집이다. 겨울에 추울 것 같아서 두꺼운 조립식 판넬 덧대기 작업을 했다. 사람이 들어온다고 해서 겨울에 춥지 않게 한 것이다. 이 집의 구조는 독특하다. 방이 세 개인데, 방 한 개는 별도로 세를 줄 수도 있게 출입문, 화장실, 주방이 있다. 두 개의 방에는 출입문, 거실, 주방, 화장실이 있다. 청년이 혼자 살기에 저녁에 들어와서 잠을 자고, 아침에 나간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다가 하루는 집 앞에 이삿짐 차가 와 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청년이 이삿짐을 잔뜩 싣고 왔다. 나는 혼자 사는 청년이 이렇게 이삿짐이 많은 줄 몰랐다. 그렇게 많은 이삿짐을 가지고 오는데 나는 몰랐다. 청년에게 집을 빌려주면서 청년이나 목사님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이렇게 이삿짐이 많으면 나갈 때에 쉽게 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짐이 많지 않으면 이동하기가 쉽지만 큰 냉장고에 장롱이 있으면 옮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공인중개사를 하는 분에게 여쭤보니 무엇이라도 받아놓으라고 한다.

청년을 불러서 언제까지 사용하겠다는 다짐을 받아야 할 것 같았다. 이삿짐 정리가 끝나면 만나자고 했더니 잠시 후에 왔다. 

“뭐라고 써야 되지 않겠어요?”

“저 집 얼마에 세를 놓았어요?”

“500만원에 30만원을 받았어요.”

“그럼 그렇게 드릴게요. 보증금은 다 지금 다 드릴 수 없어요.”

“그럼 300만 원 줄 수 있나요?”

“네, 300만원 드릴게요.”

전에는 월세는 낼 수 있지만, 보증금은 낼 돈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돈이 있다고 한다. 계좌번호를 달라고 하더니 즉시 입금을 한다. 그래서 집에 있던 임대차계약서를 찾았다. 그걸 보고 임대차계약서의 형식을 갖춰야 될 것 같았다. 내가 불러주고 청년이 썼다. 


  그런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청년이 목사님에게 전화를 해서, 목사님이 사모님에게 말을 하고, 사모님은 아내에게 전화를 하고, 아내는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내용은 청년이 가게를 차리려고 준비한 돈인데 그 돈이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청년은 군대를 갔다 온 성인이다. 그런데 그런 말을 나에게는 하지 않고 왜 몇 다리를 건너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사정이 어떻든지 그런 말을 나에게 직접 설명했어야 했다.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이 그런 수단이 없으면 어쩌란 말인가? 아내에게 말했다. 청년이 직접 와서 말을 해야 하니 그렇게 전하라고 했다.

 

  청년이 찾아왔다. 그동안의 사실을 설명하니 ‘사실이 맞다‘고 했다. 당신이 결정하고 서명한 일이다. 성인이 스스로 결정한 일에 대한 책임이 있다. 작은 사업이라도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이 즉흥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자기가 내린 결정의 뒤처리를 감당할 수 없으니까, 목사님 등 제3자를 끌어드리는 것은 좋은 태도가 아니다. 

“본인이 결정한 일이므로 결정에 조금이라고 책임을 져야 합니다. 보증금과 월세는 내년 3월에 나가면 돌려주겠습니다.”

 개인적인 견해를 말할 기회를 준다면, ‘청년은 취직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생각하지도 못한 성공을 할 수도 있지 않은가. 

 기도원에서 들은 이야기의 어떤 장로처럼 모질게 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부디 하고 싶은 사업으로 성공하기를 기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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