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중반의 늦은 나이에 사회복지대학원에 입학을 했습니다. 당시 나보다 2살이 많은 목사님이 계셨지만, 우리 기수에선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았습니다. 사회복지대학원에 입학한 것은 대학 동기생의 권유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나는 상담대학원엘 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평택대학교에는 상담대학원이 없었습니다. 안양에 있는 대학원에서 상담을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대학동기생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상담을 공부하고 싶다는 뜻을 말했습니다.
“사회복지대학원에서도 상담을 가르쳐줘요. 나를 같이 사회복지 공부해요.”
라고 말하면서 사회복지대학원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회복지대학원엘 입학했습니다. 입학과 동시에 과대표를 맡았습니다. 학기가 끝날 때마다 각종 이벤트를 하였습니다. 반응도 좋았습니다. 학우들의 사랑을 받은 덕분이었습니다.
《사회복지개론》을 강의하던 교수님이 사회복지협의회를 소개하였습니다. 이곳에는 아직 그런 협의회가 없다고 합니다. 강의가 끝난 후 교수님을 찾아갔습니다. 이곳에 사회복지협의회를 만들자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몇몇 교수님 등의 지원을 받아 (가칭)사회복지협의회 준비사무국장으로 사회복지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졸업 후에는 장애인과 함께 장애인 공동작업장을 만들었습니다. 물세탁을 전문으로 하는 작업장입니다. 사우나, 모델, 뷔페식당, 헬스클럽, 예식장 등에서 나오는 세탁물을 받아서 세탁한 후 납품했습니다. 작업장이 있는 곳 부근에 거주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공동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힘들지만 보람이 있었습니다. 규모도 점차 커져갔습니다.
어느 날 사회복지대학원 동기생 중에 목사 사모님이 계셨다. 사모님이 목사님과 세탁공장을 찾아왔습니다.
“웬일이세요?”
“장로님 뵙고 싶어 왔어요.”
웃으면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용건은 자기에게 와서 도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완곡하게 거절했습니다. 돌아가셨는데 며칠 후에 또 찾아 왔습니다. 간곡하게 부탁을 하십니다. 생각해보겠다 말씀드리니 돌아가셨습니다.
이 목사님은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근무를 하시다가 퇴직 후 목회를 하십니다. 교사시절에도 독거노인들을 돌보셨다고 합니다. 노인 무료급식소도 운영하고 계십니다. 그 외에 복지시설이 몇 군데 더 있습니다. 노숙자를 위한 시설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지자체로부터 장애인 세탁시설을 위탁받았는데 자기는 할 줄 모르니 와서 운영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고민을 했습니다. 내가 개척한 이곳은 본궤도(本軌道)에 올랐습니다.
‘이제 다른 사람에게 인계를 해주자. 그리고 새로운 도전을 향해 가자. 혼자 고생하시는 목사님을 도와주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젊은 후임자를 찾아 인계를 해주었습니다.
세탁공장을 인계하고 한 달간 쉬었습니다. 공장을 하면서 쌓인 피로를 산과 들로 다니면서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로 샤워했습니다.
그리고 복지시설에 출근을 했습니다. 당초 생각과 달리 나에게는 맞지 않은 직급이었습니다. 시설장, 사무국장이 있고 그 밑에서 일을 했습니다. 세탁공장은 있지만 가동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수리를 해야 하는데, 수리를 할 수 있는 예산은 없습니다. 시에 예산을 신청했습니다. 어렵게 1억 원의 예산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산집행이 안 됩니다. 왜 그런지 국장, 시장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야기인 즉 이렇습니다.
지자체 장애인 협회에서 세탁공장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중단을 했습니다. 왜 그런가하면 이곳은 지하수가 충분히 안 나옵니다. 세탁공장에 지하수가 안 나오니 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상수도 시설을 안 되어 있습니다. 상수도가 있어도 세탁공장에 상수도를 사용하면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습니다.
이곳 복지시설의 정년은 만60세입니다. 1년 6개월을 근무하고 그만 둘 수밖에 없습니다. 사전에 이런 정보를 알려주지 않은 목사님이 야속했습니다. 물어보지 않은 나도 불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