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를 믿나요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하여

by 온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있다.


나는 일단 MBTI를 너무너무 좋아한다. 아직 MBTI가 유행하기 훨씬 전인 2000년대 초반부터 MBTI의 존재를 알았고, 그로부터 수백 번도 넘게 주기적으로 다시 테스트해서 내 유형을 탐구하고 분석했다. 사람들을 보면 얼추 MBTI를 짐작해 보는데 타율이 상당히 높다.

MBTI만큼 푹 빠졌던 것으로는 애니어그램이 있다. 성격유형을 16가지로 구분해 설명하는 MBTI와 달리 애니어그램은 9개의 성격유형으로 구분하되, 통합, 분열, 날개 등의 개념을 통해 하나의 유형을 다각적으로 분석하는 성격 검사이다. 애니어그램이 너무 흥미로워서 1박 2일 연수 과정에 참가하기 위해 상경하기도 하고, 애니어그램 관련 팟캐스트, 소설 등을 찾아 읽기도 했다.

또 내가 좋아하는 것은 사주와 점사다. 둘을 테크니컬하게 분석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에게 둘은 크게 다른 의미가 아니라 함께 묶어 본다. 나는 1~2년에 한 번씩 점을 보러 간다. 최근엔 챗지피티 사주가 아주 재미있어서 이것저것 물어봤더니 어느 날은 챗 지피티가 내 생년월일과 시를 듣더니 ‘이제 일반 사주 풀이는 그만해도 되지? 너무 많이 반복했잖아.’라고 말하기도 했다.



MBTI를 믿지 않는다는 사람을 보면 솔직히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MBTI를 믿지 않을 수 있다니. 나에게 MBTI는 이런 거다. 내가 말한다.

‘나는 빨간 과일을 좋아해.’

‘나는 동그란 과일을 좋아해.’

‘나는 가을에 나는 과일을 좋아해.’

‘나는 아삭한 과일을 좋아해.’ ……


그러면 MBTI가 진단을 내려준다.


‘너는 사과를 좋아하는구나.’


이런 단순하고 소박한 논리를 어째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또 누군가는 이렇게 묻기도 할 것이다. 그야말로 바보 같은 동어 반복 아니냐고. 흠.


사주를 보고 나면 나는 너무나 흥분해서 남편에게 이야기를 옮긴다. 그때는 내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 내가 믿고 싶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생생하게 옮긴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은 이야기한다. 뻔한 이야기 아니냐고. 그런 이야기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고.

주일 미사만 겨우 나가는 날라리 신자이지만 사주 이야기를 하려니 좀 찔린다. 하지만 사주 보는 걸 끊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나는 뻔한 말이 주는 위로가 좋다.



나에게는 이야기를 쏟아내는 사람들이 자주, 그리고 많이 있다. 그들은 질문과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내 곁에 선다. 나는 그들을 이끌어 차분하게 내 곁에 앉힌다. 그들은 준비도 없이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그 이야기들은 두서도 없고, 논리도 없고, 인과관계도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마음을 다해 집중한다. 애초에 나는 세상에 관한 많은 지혜와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다만 요약하고 정리하는 데는 조금 소질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차분히 듣다가 말이 잠시 끊긴 사이, 나는 그들의 말을 요약해 본다. 지금 하는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냐고. 너의 감정이 이렇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냐고. 언제나 내 요약이 맞을 리 없다. 더러 그런 것 같다는 대답이 오기도 하지만, '그것도 있지만...'으로 시작해 다시 긴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찌 됐든 그 이야기는 끝이 나고, 그들은 스스로가 찾아낸 해답을 가지고 의자에서 일어난다. 해답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마음에 퐁당 던져진 구체화된 화두를 안고 간다.



동어를 반복한다는 것, 뻔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인가.



나는 사과를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간결하게 깨닫는 일은 너무나 중요하다. 내가 사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나는 무를 좋아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차 오를 수도 있다. 푹 익힌 무보다는 수분감이 가득한 겨울 생무의 아삭함을 좋아할 수도 있다는 것 말이다. 이것은 나에게 뻔한 이야기가 없었다면 다다를 수 없는 결론이다.



사실 내가 쓰고 있는 이 글도 뻔한 말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평생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갇혀 살았다. 그런데 챗지피티가 나에게 에세이를 써 보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했다. 그때 내 머릿속이 반짝했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꼭 소설이어야 할 필요는 없는데. 그래서 일상을 에세이로 쓰기 시작했는데 벌써 글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소설을 쓰려고 몸부림칠 땐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속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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