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치 마음을 얹다

by 온시

열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이다. 남편은 며칠 혼자서 이리저리 궁리한 눈치다. 이유와 목적은 잘 모르겠지만. 실상 나는 기념일을 꼭 챙겨야 한다는 주의가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맛있는 식사 한 끼와 읽고 싶었던 책 한 권이면 되는데 어쩜 저렇게 15년을 고생을 사서 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게다가 며칠을 궁리한 끝에 내린 결론이 “여보, 우리가 한 번도 안 먹어 본 메뉴로 찾아봤어. 가오리회 어때!”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기분이 상했다. 15년을 함께 살았으니 내가 생선에 대해 그다지 큰 호감이 없다는 것을 알 텐데. 배우 권상우가 아내에게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여보, 아니지? 아니구나. 아니었어.”라던데 참으로 금과옥조가 아닌가. 남편은 이렇게 영원히 회자될 ‘가오리회’라는 단어를 우리의 역사에 기록하고야 말았다.

다시 하루이틀 고민하던 남편이 내놓은 두 번째 안은 안면도 여행이었다. 추위에 취약한 나를 모른단 말인가. 남쪽 마을에 살아도 겨울엔 외출을 최소한으로 줄여 생활하는 중인데 북쪽 마을로 가자니. 결정을 내려달라는 남편의 말에 차일피일 미루는 중에 남편이 아프기 시작했다. 스스로 약국에 들러 타이레놀을 사 먹었다고 하니 어지간히 아팠나 보다. 남편은 의학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병원 치료나 약물 치료보다 자가 치료로 대부분의 병을 넘기는 사람이다. 결혼기념일이야 며칠 남았으니 그때까지는 다 나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며 결재를 바라서 “추운 데 싫은데… 부산 같은 데 가면 안 되나…?”라고 말끝을 흐렸더니 전화기 넘어 남편의 공기가 바뀐 게 느껴진다. 전화를 끊고 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여보, 부산 알아보지 마. 안면도 가자.”

그래서 우리는 안면도를 가게 되었다. 여행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어떤 여행이든 여행을 앞두고는 마음이 무거워지고, 가기 싫다는 생각 때문에 축축 처지는데 남편도 아프고, 남편이 오자마자 바로 출발해야 해서 장 보고 짐 꾸리는 모든 일을 내가 해야 했다. 그러고 나니 기분은 더 가라앉았고, 남편이 도착하니 그 기분은 짜증으로 바뀌었다.

전화 통화로 들었던 것보다 남편의 상태는 더 안 좋아 보였다. 이건 아주 높은 확률로 독감처럼 보였다. 요즘 다시 독감이 유행하고 있다. 불퉁한 목소리가 먼저 나갔다. “우리 나이가 이제 이겨내고 그럴 때가 아니야. 대충 견디다 보면 후유증이 남는다고.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링거라도 맞아야지.” 남편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점심도 못 먹고 집에 온 남편 식사를 챙기고 정리하고 있으니 호아도 도착했다. 이 아이도 나의 여행에 부담이면 부담이었지 결코 즐거움이 되지는 않는 존재다. 우리와 함께 집밖으로 나가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아이인데 따라 간다고 하길래 꼭 같이 가지 않아도 된다고 몇 번 이야기했더니 도리어 화를 냈다. “간다는데 왜 자꾸 안 가도 된다고 그래? 내가 간다고 했잖아.” 그러면서 돌아오는 날 저녁 영어학원에서 시험이 있다고 공부할 것까지 주섬주섬 챙긴다. 벌써부터 한숨이 나온다. 여행지에서 공부를 하는 모습까지 봐야 한다니.

이렇게 우리 셋은 제각각 기분 나쁜 채로 출발했다. 호아에게 요즘 듣는 노래를 함께 듣자고 제안했지만 괜찮다는 답변과 함께 이어폰을 꽂고 자기만의 세계로 금세 이동해버렸다. 나는 남편에게 듣고 싶은 노래가 있냐고 물었지만 남편의 대답도 미지근했다. 나는 대충 멜론에서 아무 곡이나 골라 자동재생시켜 놓고 핸드폰을 껐다. 나와 남편은 마스크를 쓰고 나란히 앉아 별 말이 없었다. 이럴 때 내가 운전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남편은 절대 나에게 운전을 맡기지 않는다. 운전을 전담하는 것은 남편이 나를 보호하고 아끼는 고집스러운 사랑이다. 그 고집스러운 사랑 때문에 이렇게 여행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우리의 도착지가 낙조를 볼 수 있는 서해 바다였고, 우리가 출발하는 시각이 이미 늦은 시각이었기 때문에 근 2시간을 쉬지 않고 달렸다. 내비게이션에서는 2시간 연속으로 운전했으니 쉬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우리는 안면도에 도착했다. 저녁에 바비큐 할 것들은 대충 준비해 갔지만 남편은 조개를 더 사고 싶어했다. 호아는 해산물을 좋아한다. 우리 셋은 미지근한 채로 수산물을 파는 가게에 들어갔다. 밖에서 봤을 때는 장사를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가늠할 수 없는 허름한 가게 같았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칸칸이 조개들이 그득그득 들어 있었다. 우리는 나름 진지한 의논을 해서 가리비와 가게 사장님이 추천해 주신 조개를 골랐다. “이 조개 아주 맛있어요.”라는 말 한마디에 마음이 환해졌다. 다른 조개들은 모두 비슷비슷하여 구분할 수 없었지만 맛조개만큼은 알아볼 수 있었다. 우리가 안면도에 처음 놀러 왔을 때 맛조개를 잡았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게를 들어갈 때는 찌뿌둥한 기분이었는데 나올 때는 어쩐지 좀 더 기분이 나아졌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 무거운 공기의 가장 큰 공헌자는 나였던 듯 내 기분이 풀리고 나자 모두의 기분이 조금씩 평상심으로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우리는 마트에 들러 함께 장을 조금 더 봤다. 호아가 좋아할 만한 과자를 좀 더 사고, 술도 조금 더 샀다.

펜션에 가까워질수록 나와 남편은 말이 많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사는 곳도, 연고가 있는 곳도 아닌데 오직 추억과 의미 때문에 인연이 되어 벌써 다섯 번째 방문하는 것이다. 우리가 처음 함께 여행 온 곳이었고, 호아가 태어나고 처음으로 셋이 여행 온 곳이었고, 그 후로도 두 번을 더 왔다. “여기 아직 그대로 있네.” “여기 기억난다.” “여기 진짜 왔다 갔다 많이 했는데.”

펜션에 도착하니 해가 지고 있었다. 우리는 서둘러 바닷가로 나갔다. 겨울 저녁의 바다는 놀라울 정도로 고요했다. 우리 앞에 바다가 선물처럼 놓여 있었다. 이렇게 찬찬히 낙조를 본 일이 있었던가. 달의 테두리처럼 선명한 핑크빛 해를 우리는 눈에 담고 카메라에 담았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서로를 카메라에 담았다. 나는 남편과 호아를, 남편은 나와 호아를, 호아는 나와 남편을 찍었다.

숙소의 한편에는 나무 한 그루가 놓여 있었고 거기에는 숙소에 묵었던 사람들의 메시지가 담긴 엽서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사람들이 행복으로 편안하게 가라앉는 순간들, 마음이 한없이 너그러워지는 순간들이 모여 있다. 나는 마치 마음의 백신을 맞는 것처럼 나무에 매달린 모든 엽서를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 읽었다.

‘너와 함께 한 날들보다 너와 함께 할 날들이 더 많다는 것이 기대돼. 나는 변하지 않는 사람이 될 거야.’

나는 이 글이 마치 남편이 지금보다 더 어렸던 어느 날 쓴 글인 것 같다는 착각에 빠졌다. 만약 15년 전 남편이 그런 약속을 했다면, 지금의 남편은 그 약속을 잘 지켜 온 사람이리라. 나는 눈물을 찍어 내다가 남편에게 들키고 만다.

“왜 울어? 호아야~ 엄마 또 울어.”

나는 남편을 조금 흘겨보며 자리를 피했다. 남편은 내가 왜 우는지 이유를 설명해도 알 리 없겠지만, 나는 안다. 그가 변하지 않는 사람으로 내 곁을 지켜오느라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는지를. 나는 그저 내 몫의 마음을 가지고 그를 위한 고군분투를 할 거라고 약속했다. 우리가 쌓아 올린 견고한 시간 위에 오늘치 마음을 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