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우”하면 “시작”으로 대답하던 밤들

by 온시

나는 누군가와 같이 자기에는 다소간의 약점들을 가지고 있다. 일단 가장 고약한 잠버릇은 옆에 자는 사람을 때린다는 것이다. 꿈에서 누군가를 때리면 90퍼센트 이상의 확률로 실제 사람을 때리는 동작으로 실현된다. 다행히 이 잠버릇은 나이가 들면서 횟수가 줄어들어 요즘엔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 되었다. (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아침에 남편이 나에게 말했다. “여보, 나 어제 여보한테 두 번이나 맞았어. 내 입술 괜찮아?”)

두 번째는 이불을 둘둘 감아 다리 사이에 끼워 두고 잔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자다가 문득 잠에서 깨어 보니 남편이 어둠 속에서 이불장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뭘 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이불을 꺼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불은 왜?”

“여보가 이불을 안 줘서.”

세 번째는 코를 곤다는 것이다. 1년에 한두 번씩은 직장 동료와 잠을 자야 하는 일이 있는데 이때 이 잠버릇이 나에게는 너무나 스트레스이다. 더욱이 그런 날은 몹시도 고단하고 피로하게 일을 한 날이니 코골이는 거의 확실하다. 남편은 내가 밖에서 잠을 자야 하는 날이 다가오면 특훈 아닌 특훈을 시키는데 천장을 보지 않고 옆으로 누워 잠을 자게 하는 훈련이었다. 그렇게 하면 코를 절대 안 곤다나.


남편이야 나랑 결혼했으니 참아 주고 견뎌 주는 것이야 숙명이고 업보이지만, 도대체 왜 여동생은 그 모든 것을 감내하고 나와 한 침대를 썼던 걸까? 우리는 내가 결혼했던 서른 살까지 한 방, 한 침대, 한 이불 속에서 잤다. 자다가 난데없는 공격을 당하고, 아무리 당겨도 다리 사이에 꽉 낀 이불 한 조각 뺏어올 수 없고, 가끔은 코 고는 소리 때문에 잠을 뒤척이면서도 여동생은 나와 함께 잤다. 그게 우리에겐 너무 당연했다.



우리가 우리의 방을 갖게 된 것은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허술한 입식 부엌이 붙어 있는 기다란 방에서 다섯 가족이 함께 잤는데 내가 11살이 되던 해에 그 옆방을 셋방으로 더 얻으면서 우리 자매의 방이 생겼다.


엄마는 우리가 깜깜한 밤에 무섬증을 느끼지 않게 꼬마등을 사주셨다. 꼬마등이 켜 있어도 형광등을 끄고 까만 방을 가로질러 이불 안에 들어오는 것은 귀찮기도 하고, 가끔은 무서운 일이기도 해서 우리는 규칙을 만들었다. 꼬마등 켜기와 형광등 끄기를 각자 맡기로 한 것이다. 문제는 꼬마등을 켜는 사람은 형광등을 끄는 임무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므로 자꾸만 꼬마등 켜는 시간이 빨라졌다. 벌건 대낮부터 꼬마등이 켜져 있기도 했다.


우리는 밤새도록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자주 취침 시간을 넘기곤 했다. 소곤소곤 말해서는 엄마아빠의 감시를 피할 수 있었지만 어떤 날은 터져 나오는 박장대소를 참지 못해 결국 엄마든 아빠든 슬리퍼를 신고 우리 방 창문을 열어 잔소리를 하시곤 했다. 우리는 제시간에 잠들기 위해 나름대로 규칙도 정했는데 아무리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남았다고 하더라도 상대가 “시우”라고 외치면 무조건 “시작”이라고 답하고 이야기를 멈추는 것이었다. 우리는 “시우” “시작” 구령은 척척이었지만 규칙은 자주 어겼다.


우리가 누워서 했던 것 중에 하나는 서로의 등을 긁어 주는 것이었다. 서로가 공평하게 등을 긁어주기 위해 이 또한 규칙을 정했는데 세로로 다섯 번 긁고 미처 꼼꼼히 긁지 못한 밑부분을 가로로 세 번 긁고 손바닥을 펴서 등 전체를 어루만져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잘 지켜지지 않았는데 여동생이 매번 장난기가 발동해 손으로 긁지 않고 발로 내 등을 긁었기 때문이었다. 놀랍게도 나는 자주 이 사실을 모른 채 등을 대고 있다가 가로로 긁을 때에야 뭔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짜증을 내곤 했다.


여동생은 길고 짙은 속눈썹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의 짧은 속눈썹을 거기에 부비면 여동생이 아주 싫어했다. 여동생의 반응이 재미있어서 나는 자꾸만 같은 장난을 쳤다. 큰 다라이에 각자의 맨몸을 넣고 마주 보고 앉아 통목욕도 자주 했다. 나중에 둘 다 몸이 커져 다라이 하나에 둘이 못 들어가게 되자 엄마가 작은 다라이를 하나 더 사셔서 두 다라이를 나란히 놓고 목욕을 했던 기억도 난다. 그 작은 다라이가 너무 작았던 나머지 동생이 들어가자 받아 놓은 물의 절반 이상이 와르르 쏟아져서 둘이 빨가벗고 죽게 웃었다.


그렇게 진한 신체 접촉이 있었던 시절을 떠올리니 새삼스러운 마음이 들긴 한다. 그때처럼 동생과 한 이불 덮고 잠자는 일은 더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일들은 한때의 추억과 시절로 결코 닫히지 않는다. 우리의 우정과 사랑은 그때서부터 이어져 현재를 돈독히 지나 누군가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이어지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