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넷

by 온시

해민에게 유진이라는 존재는 뭐였을까. 어느 노래 가사처럼 ‘다가서면 멀어지고 멀어지면 가까운’이었을까. 이것은 유진의 입장에서는 명백한 이야기였겠으나 해민에게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었다. 유진이 다가오면 멀어지고 싶고, 유진이 멀어지면 가까워지고 싶은. 하지만 그보다 해민은 유진을 믿었다. 유진을 자신했다. 유진은 언제든 자신을 내치지 않으리라는 것. 해민은 그것을 믿었고, 그 믿음이 해민의 삶에 커다란 위로가 되었다.


그해 유진이 또다시 저만큼 멀어지게 된 것은 해민이 그만큼 다가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해민은 마치 그렇게 말하라고 종용하는 사람처럼 굴었다. 유진은 그 말을 참을 수가 없었다.


비가 많이 내리는 밤이었다. 해민이 집 앞에 도착했을 때 해민의 집 골목 끝에 유진이 서 있었다. 해민은 유진이 우산을 쓰고 있었지만 비를 맞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민은 유진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 짐작할 수 있었다.


“잠깐만 이야기 좀 해.”

“무슨 이야기.”

“잠깐이면 돼.”


해민은 자신의 목소리가 이미 차가워졌음을 깨달으며 유진을 주차되어 있던 자신의 차로 이끌었다. 해민이 운전석에 앉고 유진이 조수석에 앉아 둘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차를 때리는 빗소리만이 둘 사이의 공백을 채워 주었다.


한참 만에 유진이 입을 뗐다.


“나는 정말 이 말을 안 할 수가 없어. 안 할 수가 없어서 하는 이야기니까 들어줬으면 좋겠어. 지금 내 사정이 안 좋다는 것 알아. 너는 이미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나는 아직 대학생이야. 게다가 나는 여기도 아닌 서울에서 지내야 해. 그런데 잠깐일 거야. 그리고 내가 자주 올게. 너가 절대 내가 서울에 있다는 것 때문에 외롭다 느끼지 않게 내가 잘할게. 그리고 1년 후에 내가 취업할 거야. 어떻게든 여기로 다시 올 수 있게 할 거야. 그러면 돼. 정말 그러면 돼. 나는 정말 잘할 수 있어. 너가 기회만 준다면.”


해민의 한숨 소리에 유진은 재빨리 말을 붙여 해민의 말을 막았다.


“지금 대답하지 마. 며칠만 더 생각해 봐. 그리고 나서 대답해. 이건 꼭 들어 줘.”


유진은 그 말을 남기고 해민의 차에서 내려, 걸어갔다. 빗물이 흘러내리는 차창으로 유진이 멀어지는 것이 보였다. 해민은 스스로가 지긋지긋하게 느껴졌다.


다음날 해민은 유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역시 안 되겠다고 말했다. 수화기 너머 유진이 작게 웃었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그런데 나는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어.”

“이제 우린 어떻게 해야 해?”

“해민아. 이제 나한테 연락하지 마. 안 했으면 좋겠어.”

“진짜 그걸 원해?”

“응. 하지 마. 절대.”


유진은 방학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갔다. 해민은 유진의 부탁을 꼭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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