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이불을 버리며

by 온시

남편이 숙소에서 가져 온 이불을 버렸다. 침대 패드였는데 호아가 어릴 때 썼던 이불이었다. 호아가 어릴 때 썼던 이불이었으므로 핑크색이었다. 당연하게도.


남편이 이 이불을 챙기던 날은 우리가 조금 다툰 뒤였다. 어떤 일로 싸웠는지는 잊었지만 이제 곧 헤어질 일요일 밤인데도 우리는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다. 각자 심통 난 채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때 남편이 이불장을 뒤지더니 이 이불을 꺼내 와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나는 금세 눈물이 날 것처럼 마음이 슬퍼졌다. 싸늘하고 좁은 숙소 침대에 문득 깔려 있을 허름한 핑크색 패드를 생각하니 마음이 막막해졌다. 내게 죄책감을 주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테다. 남편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단연코. 다만 남편에게는 취향이 없을 뿐이다. 물론 이불장에 무난한 회색이나 흰색 계열의 싱글침대용 패드가 있었다면 남편은 그것을 집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집 이불장에는 싱글침대용 이불이라곤 호아의 것밖에 없다. 남편이 숙소를 얻어 혼자 살게 된 지 6년이 지났지만 그랬다. 취향도 욕심도 없는 남편의 소비는 늘 뒷전으로 밀리다 보니 이런 식이 되어 버렸다.


이후 화해를 하고, 그때, 싸울 때 혼자서 핑크색 이불을 챙기는 모습이 너무 웃겼다고, 나한테 미안하라고 일부러 그런 거냐고 물었지만 남편은 그저 가져갈 수 있는 이불이 그것밖에 없어서 그랬다고 무심히 대답했다. 그렇게 남편의 숙소 침대에서 몇 개월을 보낸 핑크색 패드가 다른 이불들에 섞여 돌아왔고 나는 그제야 그 패드를 버리게 된 것이다.


패드를 안고 이불수거함까지 걸어가는데 남편의 향기가 훅 끼쳐왔다. 이상한 일이다. 남편과 내가 함께 쓰는 이불에는 남편 향기가 배이지 않는다. 나는 그리운 듯 이불에서 나는 향기를 맡았다. 그 향기는 금요일 밤에 지친 몸으로 두 시간 여를 운전해서 집에 돌아왔을 때 남편에게서 나는 향기와 비슷했지만, 그보다는 청량한 외로움이 느껴지는 향기였다.



나는 남편의 숙소에 갔던 날을 떠올렸다. 다른 지역을 여행하고, 마침 거리가 가까워 들러보자 했던 기습방문이었는데도 남편은 당황하지 않았다. 마침 어제 대대적인 집 청소를 했고, 그제 욕실 청소를 했다며 당당했다. 남편이 그곳에 혼자 나와 산 지 1년이 넘었지만 사실 숙소에 가기는 두 번째였다. 처음 방문은 입주하기 전에 가구 배치를 위해 간 것이었으니 진짜 사는 모습을 보러 간 숙소는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남편의 말대로 숙소는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그런데 깨끗한 게 문제랴. 싱크대 서랍에는 햇반과 라면이, 냉동실에는 닭가슴살이 쌓여 있고, 방 한쪽에는 따로 개어 놓을 필요도 없이 건조되어 있는 몇 장의 속옷과 양말들. 벽에는 뜬금없이 내가 색칠한 DIY 명화, 클림트의 키스와 텔레비전 선반에 올려 둔 호아가 어릴 적 그렸던 그림 액자, 명화와 가족 액자의 맞은편 침대에 앉아 간이 테이블을 펼쳐 놓고 텔레비전을 보며 닭가슴살과 두부, 양배추, 계란 등을 주재료로 한 괴식(이 음식들은 가끔 남편이 사진으로 보여줘서 잘 알고 있다.)을 먹고 있었을 남편을 생각하니 코끝이 시큰했다.


혼자 지내는 남편에게 연민을 느낀다고 이야기하면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다. 집안일에 대한 아무런 책임과 의무도 없이 자기 자신만 최소한으로 돌보는 주중의 삶이 부럽기만 하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얼마간 정말 그렇다고, 마음을 다잡아 보기도 했지만 어째서인지 그 마음은 내 것이 되지 못하고 결국엔 다시 남편을 연민하는 쪽으로 마음이 돌아섰다. 나랑 호아는 이렇게 따뜻한 향기가 풍기는 집에서 둘이 함께 지내는데 남편은 집의 향기란 찾아보기 힘든 냉랭한 곳에서 홀로 시간을 견디다 온다는 생각에 마음이 슬퍼졌다.


남편은 호아와 내가 있는 집에 돌아오면 마치 일주일 간의 시간을 보상해 주려는 듯 바쁘게 움직인다. 내가 요구하는 일들을 재깍재깍 해치우고, 나를 위해 맛있는 식당이나 예쁜 카페를 찾아 데리고 간다. 호아의 숙제를 봐 주고, 호아의 학원을 라이딩한다. 남편은 또 남편대로 나를, 호아를 연민하는 것이리라.


사랑은 어쩌면 서로에게 조금씩 미안함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서로에게 미안해하고, 연민할 때 조금씩 양보하고 너그럽게 용서하는 마음이 생긴다.



나는 이불수거함에 남편의 이불을 밀어 넣었다. 남편의 침대에 어울릴 패드를 한 장 더 사야겠다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