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만만해 보여?”
호아가 문득 묻는다.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호아는 잔뜩 심통이 나 말한다. “내가 만만해 보이니까 다들 날 막 대하는 것 같아!” 호아에게 만만해 보이지 않기 위해 각을 세우고 날을 세우는 사람보단 둥그렇고 편안한 사람이 더 좋은 거 아니겠냐고 대답했다. 그것은 단순히 위로를 하기 위한 말은 아니었다. 나는 진심을 다해 말하고 있었다.
호아만큼 어렸을 때, 그리고 그 뒤로도 꽤 한 세월을 착해 보인다는 말이 싫었다. 나는 누가 봐도 착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언제나 조금 놀랄 듯 열려 있는 동그란 눈매와 이미 슬쩍 미소를 짓고 있는 듯 위로 말린 입꼬리의 여자 아이는 분노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단호함도 없어 보였다.
문제는 이게 사실이라는 점이었다. 원래 없는 것을 갖고자 하는 것이 어린 날의 어리석음 아니겠는가. 나의 추구미를 나에게 없는 카리스마, 냉정함을 두고 살았으니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 나 자신이 가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나는 만만해 보이지 않기 위해 언제나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흐물흐물 다 풀어지고 본래 모양으로 돌아왔다. 나는 세상 모든 것에는 존재의 이유가 있고, 사랑받아야 할 이유도 충분하다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이 되었다.
얼마 전에 즐겨 보는 민음사 TV 유튜브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미카엘라가 나의 1년을 지켜봤다면 언제 미소 지었을까.‘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죄를 짓고 지상으로 내려온 천사 미카엘라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전까지는 천상으로 올라가지 못한다. 그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사람의 곁에 머물며 지켜본다. 사람은 도대체 무엇으로 사는 것인가.
마침내 미카엘라는 해답을 찾는다. 사랑이었다. 사람들이 조건 없는 사랑을 주고받을 때 미카엘라는 미소 짓는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그는 마침내 다시 천상의 존재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바라건대 내 삶을 미카엘라가 지켜본다면 미소 지을 일이 많았으면 한다. 너무 대단해서 눈에 띄는 커다란 선행보다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작고 소박한 선행들을 행하며 사는 삶을 살고 싶다. 그 편이 내성적이고 부끄럼 많은 나의 성향에도 맞는 선행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내 나이가 몇이라도 남에게 받는 칭찬이 그리 큰 의미가 되지도 않는다. 내가 나 자신을 괜찮은 존재라고 믿을 수 있는 일이 가장 값진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남들보다 사무실에 일찍 도착해서 청소를 한다든지, 누군가의 말을 끊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끝까지 듣는다든지, 하기 싫은 일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부탁이라면 들어준다든지, 고마워, 괜찮아, 미안해라는 말에 인색하지 않은 것으로만 만족할 수 없는 마음이 있다. 그럴 때 남편이 있어 참 좋을 때가 있다.
이를 테면 남편은 나의 선행 대행자이다. 나는 남편 뒤에 숨어 선행을 조종하곤 한다. 주로 사람을 직접 상대해서 하는 말이나 행동이다. 가족들에게 하나씩 나눠 주려고 애써 준비해 간 영양제 선물도 나는 직접 말하지 못하고 남편에게 속삭인다. “여보 이거 드리자.” 그러면 남편은 너무나 매끄럽게 쇼핑백을 척척 건네며 선행을 매듭짓는 것이다.
혼자였으면 부끄러워서 절대 하지 못했을 일도 남편이 옆에 있으면 용기가 나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마트에 갔는데 매대에 유통기한이 지난 김이 진열되어 있었다. 유통기한이 넉넉한 김을 장바구니에 담으며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 이거 계산하면서 이야기해 드리자.” 계산을 하고 남편이 언제 말하려나 기다리고 있는데 도통 말을 안 한다. 그래서 얼른 내가 말씀드렸다. 마트를 나서며 남편에게 물었다. “왜 말 안 했어?” “여보가 말할 것 같았어.” 엥? 진짜? 내가 요새 좀 용기가 생겼나 싶어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맞다고도 생각한다. 다들 제각각의 추구미는 있는 법이니까. 그래도 호아는, 심지어 이름도 ‘좋은 아이’인 호아는, 남편이 늘 외면은 남편, 내면은 나를 빼다 박았다고 말하는 호아는, 나처럼 만만이가 되지 않기 위해 주먹 꽉 쥐고 살지 말고 처음부터 둥그렇고 부드럽게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