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금사빠'다. 금방 사랑에 빠지고 만다. 책, 사람, 물건, 음식, 운동…장르를 딱히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 직업을 선택하는 데도 한몫했다.
다큐멘터리 촬영감독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다. 당시에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이나 잊어버린 것들에 대해 영상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목표를 세우고 KBS 방송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선생님께서는 왜 연출반을 안 가고 촬영반을 왔냐고 물으셨다. 그러게, 연출을 갈 걸. 촬영과 편집이 재미있어서 몰랐다. 많은 돈과 제법 긴 시간을 투자하고 나서야, 내가 촬영감독을 하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다.
또 한번은, 타로 상담사에 혹했다. 2년 가까이 공부하고 직접 전화상담사로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를 1시간 넘게 집중해서 듣다보니 금세 진이 빠지고 말았다. 마치 내가 겪은 일인 것처럼 에너지를 쓰고 나서야, 이 일이 나를 힘들게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랑에 빠지는 건 잘 할 수 있는데, 유지하는 방법은 어려웠다. 연인도, 부부도, 어떤 모든 관계에도 다 파고가 있는 것처럼 일과 나 사이에도 그런 출렁임이 있을 텐데. 한 길만 걷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 알게 되었다. 누구나 같은 방식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같은 방식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산다는 건, 내가 뭘 좋아하고 잘하는지 알게 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문득 리트리버 한 마리가 떠오른다. 신이 나서 꼬리를 붕붕 돌리며,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여기요, 여기 재미있는 거 같이 할래요?" 그리고 한참 놀고 나면 다른 걸 가져온다. 이번엔 또 다른 사람들을 불러모으면서. 리트리버 품종은 사냥한 새나 동물을 물어와 주인에게 가져다주는 개라는 의미라고 한다. 완전 나랑 찰떡인데? 그래서 나처럼 다양한 것에 관심이 많은 리트리버들을 만나면, 이산가족을 만난 것처럼 반갑다.
자연스럽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심인 일. 과거로부터 배우고 반복하지 않도록 기억하는 일. 그러기 위해 나는 글을 계속 쓰는지도 모르겠다. 내 안에 쌓인 정리되지 않은 무언가를 꺼내 쪼물쪼물 다시 만들어보는 일. 그래서 똑같은 글이 없다. 같은 그림을 봐도, 신기하게도 다른 글이 나온다.
무수한 사랑의 기억들, 모든 순간의 열정들을 남기는 방법이 바로 이 글쓰기인가 보다. 마음을 다했던 시간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글을 쓰는 동안 다시 내 안에서 살아난다. 그때의 기쁨과 설렘, 그때의 좌절과 이별까지도.
금사빠여도 충분히 괜찮은 삶. 많은 것들을 사랑하고 기록할 수 있게 된 지금의 나에게, 잘 해왔다고 셀프 쓰담쓰담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