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 할리퀸 전집 100권을 독파했다. 꽂히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라, 나도 로맨스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요소들을 흉내내며 나만의 스타일로 풀어내는 게 무척 즐거웠다. 책을 읽으면서 익혔던 로맨스 감각을, 직접 만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까탈스러운 남자 주인공도 넣어보고 다정다감한 인물도 넣어봤다. 그 과정은 마치 놀이 같았다. 키보드 위에서 내 손이 움직이면, 주인공들은 오해했다가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졌다. 뚜렷한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그 과정을 지켜보고, 살짝 길을 만들고, 또 그 과정을 바라봤다. 마치 그 세계의 신이 된 것 같았다.
성인이 된 후에도 종종 로맨스 소설을 읽었다. 하지만 예전과는 달리, 구조와 캐릭터를 분석하며 읽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취향도 또렷하게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일명 ‘고구마 구간’을 제일 좋아했다. 주인공들이 서로의 마음을 알 듯 말 듯 헤매는, 답답하지만 사랑스러운 삽질의 시간들. 이 어긋나는 타이밍과 감정선의 좌충우돌을 따라가는 것이 묘하게 재미있었다.
왜 이런 답답한 순간에 끌렸던 걸까? 아마 현실에서도 상대의 마음을 확신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살다 보면 하고 싶은 말을 삼키는 경우가 훨씬 많다. 사회적 관계 때문일 수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일 수도, 혹은 내 마음을 잘 몰라서일 수도 있다. 그 엉뚱한 손짓발짓들이, 지켜보는 사람에게는 더 큰 재미가 된다. 결국에는 퍼즐처럼 하나씩 맞춰지며, 서로의 마음을 깨닫게 되는 ‘사이다 구간’이 찾아오게 되니까 말이다.
글 속에서는 재미있던 그 고구마 구간이, 막상 현실이 되면 진짜 속 터진다. 나는 뭘 하고 싶지? 나는 뭘 원하지? 분명히 목표가 있었는데, 막상 해보면 예상과 다를 때가 많다. 멈추고, 또 생각하고, 다시 흔들린다. 그러다 문득, 나는 왜 이렇게 흔들리기만 할까, 축 처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 빼고 모두 사이다를 마시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면, 그 길이 열릴 거라고. 이건 마치 로맨스 소설에서 완벽하게 모든 것을 갖춘 주인공이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하겠노라는 고백과도 비슷했다. 현실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또다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할 수 있는 것까지는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기다리라고. 결과는 내가 어찌 할 수 없으니 마음을 비우라고. 처음엔 이 말도 남주의 고백처럼 허황되게 들렸다. 하지만 곱씹어보니 결이 조금 달랐다. 기다리지만 말고 할 수 있는 만큼 해볼 것.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할 것. 그 과정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다는 말처럼 느껴졌다.
비슷한 말인데도, 안경에 도수가 정확하게 맞은 것처럼 상이 또렷하게 보일 때, 나는 사이다를 한 모금 마시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내가 쓴 글을 읽고, 수정하고, 또 읽고 수정한다. 꼭 무언가가 되지 않더라도, 내가 만드는 글 조각들을 정교하게 깎아나가는 일. 이제는 안다. 익히는 시간이 길수록 고구마가 달달해진다는 걸. 가깝지 않아도, 약간은 멀리 있어도, 그 사이 어딘가의 지금이― 딱 좋다. 그 기다림의 끝에, 언젠가 혀에 닿는 아찔한 달콤함이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