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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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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활발한골방지기 Mar 15. 2023

호들갑

#2 롤러코스터


내가 흐르는 양수를 보고 멈춰 서서 으아아아악!!!!!! 소리 지르자, 남편은 호들갑을 떨며 왜왜왜왜왜왜왜!!!!! 라며 맞받아쳤다.


남편의 눈알은 튀어나올 것처럼 번득였고 입은 벌어진 채로 콧구멍은 벌렁댔다.

한 손은 내 손을 잡고 있었고 짐을 든 다른 한 손과 몸은 나와 최대한 떨어진 상태로 유지했다.(왜 그랬을까?) 그 자세는 마치 인간의 손을 잡고 가는 오랑우탄 같았다. (어느 누가 봐도)

심지어 우리 둘은 마치 덤앤더머처럼 별 것도 아닌 것으로 복도가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순간 너무 웃겼지만 웃을 틈도 없이 양수는 더 쏟아졌다.


정기검진을 갔을 때, 태동이 별로 없다고 의사에게 투덜댔더니 양수가 굉장히 많아서 아이가 움직여도 엄청 예민하지 않은 이상 느낌이 별로 없을 수 있다고 했다. 뭐, 아이도 움직임이 그렇게 활발하지 않은 아이인 것 같아서 더더욱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말로만 듣던 내 뱃속의 '양수의 양'을 눈으로 보니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그 충격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양수는 그 정도의 양으로 멈추지 않았다.  


남편은 시동을 걸었고 나는 조수석에 탔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는 순간 양수가 '와아아아아아'하면서 쏟아졌다.


나는 거의 우는 말투로 신랑을 붙잡고 흔들었다.


"끼야아ㅏ악!! 어떡해, 어떡해!! ㅠㅠ 시트 다 젖었어!!!!"

"괜찮아! 괜찮아!"

(도대체 이 와중에 시트 걱정할 정신이 있었다는 게 신기...)


운전하던 남편은 나를 챙기랴, 운전하랴.. 아마 어떻게 병원으로 갔는지 기억 못 할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방지턱!! 방지턱 살살 넘어!!!(심한말)"


"알았어, 알았어! 미안해!"

남편은 거의 울면서 얘기했고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아마 뱃속에 있던 큰아이는 이런 사람들이 내 부모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을 것이다.

부모라는 두 남녀는 그저 양수가 터진 것뿐인데(?) 전쟁이라도 터진 것처럼 온갖 호들갑은 다 떨고 있었으니까.



병원에 도착하자 양수로 젖은 내 다리가 굉장히 창피했다. 그때 까지도 진통도 안 느껴졌고 그저 양수만 터진 것인데 어떻게 애가 나오나 싶기도 했다.


다리가 다 젖은 상태로 안내데스크에 갔다. 밤 10시라서 병원은 불이 다 꺼져있었고 안내데스크만 외로이 빛나고 있었다.


"저..."

"어떻게 오셨어요?"

"양수가 터진 것 같아서요.."


솔직히 그 직원도 나와 같이 호들갑을 떨어주길 바랐지만(그래야 조금 덜 창피할 것 같아서) 너무나도 익숙한 일인 듯이 직원은 수화기를 들어 귀에 댔고 곧이어 수화기를 내려놓고 나에게 무심한 표정과 친절한 말투로 분만실로 올라가면 직원이 있다고 말해줬다.


분. 만. 실


분만실?! 무서워!!!


너무 무서웠다. 양수에 젖어 차가워진 내 다리는 달달 떨리는 듯했다. 그 진동으로 온몸이 떨렸다. 마른침을 억지로 삼키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남편의 얼굴을 봤다. 별생각 없어 보였다. 미간이 저절로 좁혀졌다.

나 혼자 초조한 것 같고, 내 고통은 별개인 것처럼 나몰라라 하는 표정 같았다. 갑자기 억울해졌다.


뒤늦게 남편에게 물어보니 남편은 영혼이 나가는 것 같았다며 온갖 잡생각이 다 들었단다. 준비물은 다 챙겼는지, 잠깐 짐 가지러 가는 사이에 아파서 나를 찾으면 어쩌나 이제 진짜 가장이 돼서 먹여 살려야 하는데 일을 더 해야 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 사실을 알 턱이 없었다. 그저 남편을 심부름이라도 시켜서 눈앞에 잠깐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 나의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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