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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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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활발한골방지기 Mar 16. 2023

진통 시작

#3

 좁디좁은 분만실 침대로 안내받았다. 보호자는 1명만 들어올 수 있다고 했다. 나와 남편은 간호사 뒤 꽁무니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오늘 많이 오시네?"


간호사가 중얼거렸다. 맞다. 두 곳을 제외하고는 분만실의 커튼이 다 쳐져 있었다. 이미 많은 산모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안심보다는 긴장이 바짝 되었다. 이제 시작 같았다. 


침대는 너무 좁아서 옆으로 눕기가 조금 불편했다. 그래도 오는 내내 큰 호들갑을 떨었던 터라 긴장이 살짝 풀려 지쳐 누워있는 것을 선택했다. 


남편이 준비해 온 속옷으로 갈아입고 분만실복으로 갈아입었다. 간호사는 흘러나오는 양수 때문에 대왕패드를 가져다주었다. 


잠시 후 간호사가 다시 커튼을 열고 들어왔다. 관장을 해야 한단다.


"네...? 뭐, 뭘 해요...?"

"관장이요."

"어... 어떻게 해요...?"

"속옷 내리세요."

"으에엥..."


망설이는 나를 보더니 간호사는 약간 답답했겠지만 아무래도 치욕적일 산모를 위해 웃으며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관장약을 넣으면서 간호사는 말했다.


"무조건 오래 참으셨다가 가셔야 해요. 안 그러면 자주 왔다 갔다 하시거나 잘 안될 수도 있어요. 화장실은 저쪽에 있고, 어쩌고저쩌고..."


이후의 말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관장약과 만나자마자 설명을 줄기차게 하는 간호사를 밀치고 화장실로 달려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쩔 줄 몰라하면서 발버둥치자 간호사는 '응, 내 설명 다 듣기 전까지 너 화장실 못 가.'라는 듯이 내가 화장실로 가는 길목을 막으며 어깨를 붙잡고 설명을 이어갔다.


하지만 인간은 너무 급한 생리현상을 어떻게 참을 수 있으랴. 체면이고 예의고 다 집어던지고 나는 간호사에게 신호를 보냈다.


"프흐으아아아아"


절규에 가까운 외계어와 식은땀이 난 내 얼굴을 보면서 간호사는 알아들었고 (못 알아듣기에는 내 표정이 알려주고 있...)

"조금 더 참으시면 안돼요?"라고 말했다.


이런 매정한 사람. 

내 어깨를 잡고 있던 간호사의 손을 잡고 내려놓으며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여기서 싸면... 흡.... 누가 치워요."


간호사는 아하? 하는 표정으로 나를 화장실로 보내주었다. 


하지만 역시 종사자의 말을 들어야 했었다. 나는 그 이후로 화장실을 여러 번 왔다 갔다 했고, 그 사이에도 양수는 계속 흘러나왔다.


속이 시원하게 비워진 듯했다. 동시에 진이 빠져 힘이 들었다. 패드도 수시로 갈아야 했고 화장실도 왔다 갔다 하니 아주 죽을 맛이었다. 

간호사는 누구보다도 빠르게 내 손에 링거를 꽂고 진통주기를 체크하러 왔다 갔다 했다.


진통의 세기는 점점 심해졌다가 약해졌다-를 반복했다. 하지만 진통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금식'이었다. 

배가 비워졌기도 했고 이미 몇 시간째 눈을 뜨고 있으니 배가 고파졌다.


그 사이 간호사들끼리 수박 드실래요? 라며 서로에게 권하고 있었다. 

'아니, 조용히 좀 얘기하든가. 이 많은 산모들이 지금 금식 중이건만! 거 너무들 하시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야간근무 중인 간호사들에게 얘기할 수가 없었다. 사람은 배를 든든히 채워야 온순해지고 일을 할 수 있는 거니까.


남편에게 배고프면 뭐라도 먹고 오라고 했다. 남편은 '당신도 굶는데 내가 어떻게 먹어.'라고 했다.


하지만 "이따 진통 주기 짧아지고 그러면 더 못 먹으니까 그냥 먹고 와."라는 말과 동시에 남편은 사라졌다.


남편은 병원 근처 산모 보호자들을 타깃으로 한 24시간 음식점에서 빠르게 나오는 음식을 빛의 속도로 먹고 다시 복귀했다.

음식 냄새 최대한 안 나는 것으로 먹었다며 나에게 '나 잘했지?'라는 눈빛을 장착하며 말했다.


어이구 잘했네 잘했어. 



진통은 계속해서 진행 중이었다. 그 사이 간호사들이 내진을 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왔다 갔다.


남편은 배도 부르고 잠도 못 잤으니 점점 졸음이 몰려오는 듯했다. 당연하다. 진통을 겪고 있는 것도 아니고, 새벽 3-4시 정도였고 밥도 먹었으니 잠이 올만했다.

이때, 이미 커튼 건너에 있는 다른 산모의 남편이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저게 뭔 소리야? 실화야 이거?'라는 표정으로 남편을 돌아봤지만 남 얘기할 게 못된다.

내 남편도 그 믿기지 않는 짓을 하고 있었다. 

두 남자는 서로서로 누가 더 크게 소리를 내나 멜로디 경주를 했고 순간 너무 창피하기도 하고 이건 아니다 싶어서 남편을 깨웠다. 

때마침 진통이 다시 시작됐고, 남편에게 이를 갈며 말했다.


"졸리니?"


남편은 사색이 되었다. 곧이어 자신의 뺨을 때리며 어우 미쳤나 봐 하면서 내 화를 식히려고 온갖 난리법석을 떨었다.


나는 진통이 시작될 때마다 남편을 잡고 이빨을 보이며 놔주지 않았다.  

진통 주기가 조금 짧아졌을 때 남편이 간호사를 붙들고 자신이 죽을 것 같다며 무통주사를 놔달라며 사정했다.

처음에는 간호사가 어느 정도 진통 주기가 조금 더 짧아졌을 때 놓는 것이 좋다고 했었기 때문이다.


간호사는 진통 주기를 체크 한 다음 동의서를 작성하게 한 후 무통주사를 놔주었다. 


너무 피곤한 나는 무통주사로 잠을 잠깐이나마 잘 잘 수 있었고, 다시 온화한 마인드로 남편에게 피곤하면 눈 좀 붙이라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당신이 그렇게 고생하는데 내가 어떻게 자냐며 손사래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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