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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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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활발한골방지기 Mar 17. 2023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제1악장

#4

((주의. 극 주관적인 글로 어쩌면 불편함을 지니게 할 수도 있습니다.))



 무통 주사는 그저 신세계가 맞았다.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잠을 잘 수 있게 해 주고, 통증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 주었다. 하지만 약 효과가 떨어지면 갑자기 쌩으로 아프기 시작해 고통이 배가 되는 건 단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간호사가 내진하기 위해 오는 횟수가 점점 잦아들었다. 

마지막으로 베테랑처럼 보이는 간호사가 말했다.

"준비하셔야겠네요. 분만실 준비되는 대로 이동하실게요."


나는 다급하게 간호사를 붙잡았다.

"서, 선생님!! 무통 주사 끝나가는데 어떡해요?"


"아, 이제 무통 주사는 더 이상 못 해요. 지금 무통 주사 놓으면 아프지 않을 순 있어도 힘 잘 못주면 안 되니까요."


망했다.

내 귀를 의심했다. 진짜로? 진짜 안된다고? 


겁이 났다. 아이는 뒷전이요, 고통이 나를 집어삼켰다.


진통은 점차 세졌고 나는 몸부림조차, 숨도 쉴 수 없었다. 진짜 이럴 바에야 수술시켜 줘. 나 못해먹겠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당시에 돈이 없었던 나는 그 와중에도 살림을 걱정했고 수술비가 무서워 어떻게든 버텨보겠다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인터넷에서 미리 보고 온 심호흡 방법을 하니 진통은 조금 버틸만해졌다. 

그에 비해 남편은 어쩔 줄 몰라하며 창백해져 있었다.


드디어 분만실로 입장했다. 


"엉덩이 더 내려야 하세요. 더더더더더더더"


산부인과 굴욕 의자 제2탄이 분만실 출산배드라니. 내 아랫도리는 바람이 숭숭 들어와 이러다 말라비틀어지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차갑고 건조했다. 


근데 정말이지 신기하게도. 의사가 회음부 쪽에 마취제를 놓자마자, 진통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남편분은 잠시 나가서 대기하세요."


옆에서 내 손을 잡아준다던 남편은 간호사에게 쫓겨났고 나는 남편을 볼 새도 없이 진통을 시작했다.


"호흡하세요, 호흡!!!"


이런. 호흡하고 있는 건데 자꾸 호흡하라고 그러는지.. 이러다 과호흡으로 정신을 잃을 판이었다.


"산모분~ 조금 더 하면 돼요~"


힘주는 법을 미리 찾아본 것이 빛을 볼 시간이 왔다. 나는 배운 대로 힘을 주었고 의사가 외쳤다.


"머리 보입니다! 멈추지 마세요!"


그 말과 동시에 나는 내 밑이 찢어지게 아픈 고통을 느꼈다. 회음부를 찢는 것은 마취를 했으니 느낌이 없었다고 하겠지만 이건 정말이지 말로 표현하기에도 힘든 통증이었다. 


힘을 주다 지쳐 나도 모르게 쓰러졌다. 이미 오래전 끝난 무통 주사로 인해 진통을 계속해서 버텨온 나는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황이었다.


"안돼요!!!! 안돼!! 애기 머리 걸렸어!!! 멈추지 마세요!!! 정신 차려요!! 산모!!! 정신 차려!!"


의사가 다급하게 외치고 한 간호사가 내 머리를 부드럽게 잡아 주었고, 다른 간호사는 다리와 어깨를 만져주어 나를 깨웠다. (이때 내가 힘주는 것을 멈춰서 아기는 머리가 호리병 모양이었다. 다행히 지금은 괜찮다.)


나는 안간힘을 쓰며 마지막까지 짜내어 힘을 주었고 무언가가 빠져나갔다.

그렇게 9시간의 진통을 끝으로 아기가 태어났다.


고개를 들 힘도 없어서 아래로 눈을 내렸다. 빨간색의 아기는 의사 손에 들려 내 다리 사이 위로 올라오고 있었고, 아기는 눈을 뜨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아기와 그 짧은 순간에 눈이 마주쳤다. 


마주친 눈을 보고 놀라긴 했지만 놀란 내 마음을 볼 여유조차 없이 나는 온몸에 힘을 풀어 눈을 감았다. 

그런데 누군가 내 가슴을 풀어 헤쳤다.

간호사였다. 놀라서 눈을 뜨니 아기의 입과 코를 내 가슴에 갖다 대어 '엄마 냄새'를 맡게 하려는 의도였다. 

몇 초 뒤에 다시 아기를 들어 안고 내 가슴을 대충 덮어두고는 사라졌다. 나는 밑에도 위에도 그저 벌겨벗겨진 몸뚱아리일 뿐이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건 알았지만 수치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사치일 뿐. 나는 지쳤었다.


그사이 주변 간호사들은 바쁘게 움직였고 남편은 이제서야 소환되었다. 


가위를 쥐어주며 탯줄을 자르라고 했다. 남편은 탯줄을 자르자마자 나에게 와서 울면서 고생했다고 다 끝났다고 말해 주었다.


하지만 끝나긴 개뿔.


간호사는 다시 남편을 내쫓았다.


태반을 빼야 한단다. 뭐? 뭐를 빼? 


태반 : 태아와 모체의 자궁벽을 연결하여 영양 공급, 가스교환, 노폐물 배출 등의 기능을 담당하는 기관. 

태반이 유착이 되면 자궁 관련 질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깔끔하게 빼내는 게 중요하다. 


첫 출산이니만큼 지식이 없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같이 나오는 줄 알았다. 


태반을 빼내는 과정은 출산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조금만 참으세요."라는 말과 동시에 의사는 인공호흡하는 자세로 내 배를 위에서 아래로 쓸어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아파 입으로는 소리를 못 내고 코로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의사는 아랑곳 않아했고, 능숙하게 태반을 뺀 후 회음부를 꿰매어주었다.


이젠 아프고 안 아프고를 떠나서 정말이지 기운이 없었다. 진통과 출산 때 주는 힘은 정말이지 '젖 먹던 힘'까지 끌어올려 다 써 버린 탓이다. 


남편이 다시 들어오면서도 계속 울고 있었다. 뭘 말할 기운도 없었고 그냥 나는 살아는 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저 눈만 깜빡 거리는.


출산과정을 회고하자면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협주곡 제1악장이 떠오른다. 미친듯이 왔다갔다 하는 바이올린의 선율처럼 내 신경과 고통은 미친듯이 나를 두들겼기 때문이다.




병원은 정말이지 나에게 쉴 틈을 주지 않는다. 


간호사가 휠체어를 끌고 와서는 "내려오세요.".


"저요? 저 못 움직여요."


반항적이게 대꾸했지만 간호사는 그럼 조금 쉬었다가 내려오셔서 휠체어 타고 병실로 가시면 되세요.라고 말한 후 사라졌다.


남편은 나를 어떻게 붙잡아야 할지 감도 안 오는지 저 혼자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호들갑을 떨었다.


"조심~ 조심~ 나 잡아 나. 내 목에 팔을 두르는건 어때?"


아프니 별 것도 아닌것에 신경질이 났다. 하지만 내 비위를 다 맞추려고 노력하는 남편의 모습이 고마워서 조용히 삭혔다.



그때 엄마가 들어왔다. 딸이 걱정이 되어 부랴부랴 왔겠지만 나와 같이 무뚝뚝한 엄마는 출산을 한 딸내미를 보고 건넨 첫마디로 "와. 너 독하다. 울지도 않냐?"라고 했다.

뭐야. 엄마 맞아?라는 눈빛으로 째려보니 엄마는 애기나 보러 가야겠다며 '이서방'을 부르며 나가버렸다.


분만실 바로 옆이 신생아실이었기에. 

나는 휠체어와 덩그러니 남겨졌다. 

남편은 그래도 모녀가 있을 시간을 위해 잠시 자리를 비켜줬지만 생각보다 빨리 나온 장모의 부름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왔다. 나는 남편이 끄는 휠체어에 몸을 맡기고 병실로 갔다. 



하지만 아기가 태어났다고 해서 고통이 끝나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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