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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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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활발한골방지기 Mar 18. 2023

사람마다 응원의 방식은 다르니까

#5



엄마는 소위 말하는 '무뚝뚝'한 사람이다.


출산을 한 딸에게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하기 힘들어할 정도로. 


나에게 '독하네'라고 말을 던진 후 아기를 보러 간다 했지만 엄마는 급하게 화장실로 달려가 눈물을 흘렸다.


그 때문에 아기를 보러 간다던 엄마는 내가 휠체어에 탄 채로 분만실을 나왔을 때, 화장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로 엄마는 나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신생아실에 손녀딸이 들어갔고, 유리창으로 볼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딸에게 향한 발걸음을 돌려 춤을 추며 날아가버렸다.


하지만 나는 서운하지 않았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고, 매정하게 말을 한다고 하지만 그럴 의도와 의미를 담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엄마가 '수고했다, 우리 딸'이라고 말을 하는 그 자체를 듣게 된다면 어색할게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 모녀는 서로 마음과 눈빛으로 교환하며 이해했다.


그냥 엄마가 손녀딸을 바라보는 눈빛이 낯설었을 뿐이다.


'엄마가 저런 눈빛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네.'




입원실로 올라간 나는 간호사에게 이것저것 전달을 받았고, 


하혈은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다. 밑이 너덜너덜한 상태에서 꿰맨 부분도 아물지 않았는데 나는 하혈의 흔적을 지우는 것과 패드를 갈기 위해 화장실을 드나들었다. 


엄마와 남편이 나를 번갈아가며 부축해 주었지만 잠시 후 그것마저 불편했다.


"에잇! 둘 다 저리 가! 내가 할 거야!"


아픔에 한껏 예민해진 나를 엄마와 남편은 함부로 건들 수가 없었다. 

엄마는 사위 눈치를 보며, "어휴 지랄이네..." 라며 중얼거렸다. 


엄마의 '지랄'은 그저 욕이면서 약간의 추임새이기도 하기도 하다. 다른 욕은 태어나 엄마 밑에서 자라면서 들어본 적이 없다. 딱 엄마는 '지랄하네'와 '싸가지 없다' 이 두 가지의 욕만 허용했고, 내가 괴팍한 성격을 부릴 때만 사용했다. '지랄'은 엄마가 고르기에 악랄하지도 않고 딱 속상하고 짜증 나는 마음을 전달하는 가장 적합한 단어일 뿐이었다.

('싸가지 없다'는 엄마가 정말 화가 났을 때만 사용한다. 때문에 엄마가 '싸가지'라고 한다면 빨리 꼬리를 내려야 한다.)


남편은 장모와 아내의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어 눈이 뱅글뱅글 돌아가는 것 같아 보였다. 


잠시 후 아차한 표정으로 남편이 꽃을 사들고 왔지만 출산 후 바닥을 치는 면역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는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다. 코도 몸도 간지러웠다. 나에게 가까이 꽃을 내민 남편을 째려보며

"정말 고마운데. 나. 면역력 약해져서 꽃 냄새 맡으니까 온몸이 가렵다."


"어어? 아이고 그랬어? 집에 가져다 놓을게!"


"아니. 그냥 버려. 마음만 받을게. 가렵다는데 뭘 집에다 놓는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삐친 게 오래갈 것 같아서 그러라고 했다.

그걸 지켜보던 엄마는 사위를 안쓰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다음 날, 내 아이를 받고 회음부를 꿰매어주고 태반을 눌러서 빼준 의사가 왔다.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회음부는 잘 아물고 있고 출혈도 많이 없어졌으며 태반도 너무 잘 빠졌고, 아기도 건강해서 기분이 좋다고 웃으며 설명해 주었다. 상당히 직업만족도가 좋아 보였기에 나도 웃으며 얘기할 수 있었다. 

의사는 떠나기 전, 다음 회진 때 보고 그때까지 잘 회복하고 고생했다고 말해주었다.


여태까지 들었던 '고생했어'라는 말 중에 가장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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