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시간과 오늘의 기록이 얼마나 반짝일지

기꺼운 독서에세이

by 기꺼움
김초엽 「관내분실」(『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허블, 2019)를 읽고 쓰다.


마인드 도서관, 사후에 데이터로 이식된 영혼이 존재하는 특별한 곳이다. 학계에서는 망자들을 재현하는 것일 뿐이라고 하지만 남겨진 이들의 상실과 슬픔을 다독여주는 장소임은 분명하다. 지민은 죽은 엄마에 대한 원망으로 엄마가 도서관에 기록된 것을 알았음에도 3년이 넘도록 찾지 않다가, 자신의 아이를 가진 이후 느껴지는 엄마의 빈자리에 무턱대고 도서관으로 향한다. 그런데 엄마의 마인드가 분실되었다니. 관내분실, 도서관에 존재함에도 찾을 수 없는 상태라는 사실에 지민은 당황했다.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엄마의 기억을 자극할 수 있는 유품을 가져와서 상호작용을 보이는 마인드를 발견하는 것. 깊이 연결된 물건일수록 엄마의 마인드를 끌어당기는 힘이 셀 것이다. 지민은 엄마 유품을 하나하나 꺼내 보았지만, 엄마를 특정할만한 물건이 전혀 없다. 아빠를 통해 어렵게 찾아낸 것이 엄마가 표지 디자인했던 오래된 소설책이다. ‘김은하’로 존재하던 시절에 그녀가 출판사에서 일하며, 직접 만든 책이다.




그렇게 엄마의 삶을 궤적을 더듬어가며 조금씩 엄마가 아닌 김은하라는 사람이 보기 시작한다. “스무 살의 엄마, 세계 한가운데에 있었을 엄마, 이야기의 화자이자 주인공이었을 엄마. 인덱스를 가진 엄마. 쏟아지는 조명 속에서 춤을 추고, 선과 선 사이에 존재하는, 이름과 목소리와 형상을 가진 엄마.(266쪽)” 이 문장을 읽으며 먹먹해지는 마음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우리 엄마의 딸로 27년, 두 아이의 엄마로 10년을 살아온 나는 지민의 마음을, 마인드로 남겨진 엄마의 마음을, 무엇보다 ‘김은하’라는 오롯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렴풋이 짐작하는 게 아니라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건 아마도 나를 놓쳐버린 동시에 모성애라는 틀에 가두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엄마라는 자리는 당장 벗어던지고 싶다가도 미칠 듯이 간절해진다.




어쩌면 지금 내가 식탁 위에 노트북을 펼치고 앉아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엄마라는 자리를 지키고 싶은 간절함일지도 모른다. 글을 써야 나를 만날 수 있으니까, 어떤 역할도 부여되지 않은 나를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니까. 이 시간이 다른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한다. 언젠가 아이들이 내가 써낸 텍스트를 읽으며 엄마가 아닌 ‘김민아’라는 한 사람을 떠올려 주기를 바란다. 내가 찾아낸 아름다운 순간을 발견하고, 감탄해주면 좋겠다. 그때가 되면 지금의 시간과 오늘의 기록이 얼마나 반짝일지 잘 알고 있다. 김초엽 작가의 관내분실을 읽고 나면 이해하고, 이해받고 싶어 진다. 어느 시대에 살든 서로를 이해하는 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작가의 마음이 곳곳에 있다. 이야기들 틈에서 가장 진실하게 다가온 문장을 내가 써낸 글 안으로 정성스럽게 옮겨본다. 소중한 문장이 여기, 이 자리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엄마를 이해해요.” 정적이 흘렀다. 은하의 눈가에 물기가 고였다. 그녀는 손을 내밀어 지민의 손끝을 잡았다.(2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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