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 「감정의 물성」(『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허블, 2019)를 읽고 쓰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윤동주 『서시』중에서
윤동주 향수를 뿌리면 시인이 곁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자주 가는 서점 한쪽에는 저마다 시인의 이름을 딴 검지 손가락 크기의 직사각형 향수가 진열되어 있다. 실제 시인과는 연관성이 없는 상술일 뿐이라고 지나치기를 몇 번. 자꾸만 눈길이 머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상, 김소월, 윤동주 등 다양한 향수들 틈에서 윤동주 향수를 들고 망설이다가 집으로 데려 왔다. 매일 아침 출근 준비에 정신없지만 윤동주 향수는 잊지 않고 챙긴다.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시인과 함께 하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든다. 그저 물성을 가진 향수를 뿌렸을 뿐인데.
김초엽 작가의 소설집에서 다섯 번째 단편인 「감정의 물성」은 우리가 겪는 다양한 감정들을 형태가 있는 무엇으로 만들어낸다는 발상에서 시작된다. 잡지사 에디터 ‘정하’는 사람들이 왜 감정의 물성에 열광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침착의 비누, 설렘 초콜릿 등을 통해 위안을 얻으려는 것은 일부 납득이 되지만, 부정적인 감정인 우울체, 증오체까지 잘 팔리는 이유는 대체 뭔지, 게다가 그의 오래된 연인 ‘보현’까지 자꾸 우울체를 사들이며 그의 애타게 만든다. 결국 감정의 물성은 부작용을 일으키며 판매가 중단되는 지경에 이르지만, 정하의 답답함을 풀리지 않는다. 우울체는 보현의 슬픔을 어떻게 해결해주는가?
화자인 정하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책을 읽어서 인지, 아니면 평소 나의 성향이 투영된 건지 모르겠지만 부정적인 감정까지 구입하는 것은 이해되지 않았다. 우울이나 증오의 감정까지 소유하고 싶지 않다. 내 안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우울감을 처리하기도 힘든데, 그 감정을 형태로까지 가져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보현이 정하에게 꺼내놓은 말을 읽었을 때 그 마음이 짐작되었다. 정하가 어설프게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처럼.
“물론 모르겠지, 정하야. 너는 이 속에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내 우울을 쓰다듬고 손 위에 두기를 원해. 그게 찍어 맛볼 수 있고 단단히 만져지는 것이었으면 좋겠어.”(217쪽)
감정에 통제되는 것인지, 감정을 지배하는 것인지 모를 깊은 우울의 수렁에서 그 우울을 물성으로 만졌을 때 일순간이라도 편안해지는 감각을 느낄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녀의 상황이 내 일상과 맞아떨어지지 않기에 온전히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어떤 마음일지 가늠하게 되면서 단언하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 배웠다. 타인의 마음을 짐작해보는 것, 무조건 탓하기보다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것, 더욱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그 마음이 되어 보려고 애쓰는 것은 관계를 맺음에 있어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이다. 물론 실천이 쉽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안전성을 갖춘 ‘이해의 향수’가 만들어진다면 망설임 없이 데려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