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허블, 2019)를 읽고 쓰다.
오래된 우주 정거장, 투명한 유리창으로 말없이 지구를 바라보는 노인 ‘안나’, 그녀의 손에는 슬렌포니아 행성계로 가는 티켓이 들려있다.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제3행성 슬렌포니아에는 그녀의 남편과 아들이 있다. 가족은 개척 이주를 택했으나 안나는 함께하지 못한다. 냉동 수면 기술을 연구하는 학자였던 그녀는 개발을 마무리 짓고 떠나기 위해 홀로 지구에 남게 된다. 그러나 웜홀 항법이라는 신기술이 도입되면서 ‘먼 우주’가 되어 버린 슬렌포니아에는 더 이상 우주선을 운영하지 않게 되고, 그녀는 가족과 영원히 단절되었던 것이다. 이야기는 안나가 자신의 셔틀을 타고 우주를 가로질러가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그리움의 크기는 우주라는 공간에서도 결코 작게 느껴지지 않는다. 안나가 내면에 품은 그리움은 어떤 우주보다 깊고 아득하지 않을까?
사랑하는 존재를 만날 수 없게 된다는 상상은 가늠할 수 없이 무섭고, 두렵다. 밀린 집안일을 하느라 분주했던 어느 주말 저녁, 어찌 된 일인지 아이들은 각자의 방에서 잘 놀고 있었다. 이런 황금 같은 기회에는 해야 할 일들을 빠르게 마치는 게 중요하니까, 어느새 나는 식사 준비와 주방 청소에 몰두했다. 30분쯤 지났을까? 기특하게 오래 잘 노네, 하며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서준아~” 대답이 들리지 않는다. 대여섯 걸음이면 갈 수 있는 아이 방으로 갔다. 방 가운데에 작은 게임기만 덜렁 놓여있고, 서준이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한번 불렀다. “서준아, 서준아~” 답이 없다. 일곱 살 아들은 숨바꼭질을 할 때도 웃느라 금방 탄로 나곤 했는데, 주변엔 정적만 가득했다. 머리를 스치는 무서운 상상. 익숙한 거실의 모습은 이미 지옥이었다. 그때 “엄마~” 부르며 안방 커튼 뒤에서 나오는 아이가 보였다. 심장의 쿵 떨어지고 아이를 껴안으며 나도 모르게 펑펑 울어버렸다. 그저 엄마를 놀리려던 거였는데 서준이는 멀뚱해졌다. 돌이켜보면 채 오분도 안 되는 시간이다. 그 잠시 동안 감정은 엄청난 파동을 겪었다. 아마도 잊지 못하고 있는 몇몇 생각들이 짧은 순간 이성을 찾을 수 없게 만들었던 것 같다.
다시 소설 속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안나는 이렇게 말한다.“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어. 적어도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 같은 행성 위에서, 같은 대기를 공유했단 말일세. 하지만 지금은 심지어 같은 우주 조차 아니야.(181쪽)”나의 작은 시공간에서 벌어진 일이 광활한 시공간에서 그녀가 견뎌온 날들과 겹쳐지면서 안나의 슬픔이 거센 파도처럼 밀려온다. 결코 익숙해질 수 없었을 그리움의 크기를 상상한다. 우주를 가로질러 사라지던 안나의 셔틀이 슬렌포니아에 닿을 거라는 믿음으로 그녀에게 닿아버린 내 슬픔을 추스른다.
그녀는 언젠가 정말로 슬렌포니아에 도착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끝에.(18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