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읽는 것을 멈출 수 없는 이유

기꺼운 독서에세이

by 기꺼움
앤드루 포터 「구멍」(『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문학동네, 2019)를 읽고 쓰다.




여러 번 듣는 팟캐스트가 있다. 방송 소개를 그대로 옮긴다.


“세월호 가족 예은 아빠, 유경근님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세상끝의 사랑-유족이 묻고, 유족이 답하다> 입니다. 재산과 사회적 참사 피해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막고, 세상의 슬픔을 최소화할 방법을 찾아 머리를 맞댑니다.”


그분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변하지 않는 세상에 화가 나고, 한없이 무기력해지고, 눈물이 차오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내 감정이 당사자들이 겪고 있는 슬픔까지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팟캐스트의 진행자 유경근씨와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로 막내 동생을 잃은 조종규씨와 대화 중에 유경근씨가 이런 말을 툭하고 꺼낸다. “저는 뭐 제가 태어난 것 자체를 후회하니까요.” 이 말을 내뱉고 그는 허탈한 듯 웃었다. 일시정지를 누른 것처럼 그 이후에 오간 이야기들이 귀로 들어오지 않았다. 가늠하기 힘든 크기의 죄책감이 나를 뚫고 지나간듯했다. 얼마나 작은 죄책감을 반복해 곱씹고 나서야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며, 후회하게 되는 것일까. 심연처럼 깊고 아득한 슬픔이 가슴 언저리에서 계속 맴돌았다.




앤드루 포터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의 첫 번째 단편 구멍이라는 짧은 소설은 불의의 사고로 친구 ‘탈’의 죽음을 경험한 ‘나’의 이야기다. 열한 살, 그날의 기억을 12년 뒤에 회고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사고 현장에서의 기억은 또렷하지만, 수십 번 변형된다. 꿈속에서 발현되는 사고의 기억은 끊임없이 재편되고, 말이 되어 나올 때마다 바뀐다. 잔디 쓰레기 봉지를 ‘구멍’에 빠뜨리고, 그것을 꺼내기 위해 들어간 탈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꿈속에서 화자는 말한다. “그냥 둬.”, “별일 아니잖아.” 그건 아마도 자신이 그렇게 했으면 친구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죄책감과 후회일 것이다. 사고 기억을 수없이 회상하고, 반복하며 결코 사라지지 않는 깊은 응어리가 마지막 문장에 선연히 드러난다.


“그것이 진실이에요,라고 나는 그분들에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 꿈의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구멍 속으로 들어가고 탈은 살게 되는 그 부분은.”(15쪽)




가까운 사람을 사고로 잃었을 때 끝내 나로 향하는 후회와 죄책감을 생각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되돌리고 싶은 절절함을 나는 상상만 할 뿐 제대로 알지 못한다. 온전히 이해하고, 안아줄 수 없으면서 왜 이렇게 듣고, 읽는 것인지 자주 묻는다. 그들의 슬픔과 고통에 빗대어 무사한 날들에 안심하고 싶어서일까? 고작 그뿐일까? 겪어 보지 못한 타인의 고통이 나의 경험과 엉켜 쌓이면서 올바른 방향으로 걸을 수 있게 해 준다. 누군가의 슬픔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칼날 같은 말들에 암묵적으로 동조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사고 이면의 부조리를 직시하고, 잊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내 위치에서 나눌 수 있는 것을 고민하고, 작은 힘을 보태는 것이 그렇다. 그저 주어진 삶에 감사하고, 불행이 덮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것에서 머무르고 싶지 않다.


용기 내어 자신의 슬픔을 말해준 이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누군가의 죄책감을 세밀하게 써낸 작가가 아니었다면, 이만큼 생각하고 달라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까? 여전히 듣고, 읽는 것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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