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책] 앤셔어리의 글 라디오_앤셔어리
내게 글쓰기는 월동준비다. 일상 속 스치는 감정을 한 올 한 올 문장으로 엮는다.
-앤셔어리, 『앤셔어리의 글 라디오』(조그만 북스, 2020)
한 권의 책을 골라 들고 겉표지를 쓰다듬고 책을 열어 아무 부분을 펼친다. 속내 지의 부드러운 종이 질감을 살짝 만지고 책 냄새를 맡는다. 그다음 목차 작가소개 끌리는 부분을 찾아 글을 읽어 본다. 이런 나만의 루틴. 일련의 과정들을 차례로 즐기는 점이 독립서점 가는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이다.
- 앤셔어리 『앤셔어리의 글 라디오』(조그만 북스, 2020) 26쪽 중에서
마침내 찬바람이 에리는 겨울이 찾아오면 그간 부지런히 쓰고 짠 스웨터를 입을 것이다. 몸이 시리면 외투를 걸치고 가슴이 휑할 땐 따뜻한 글 실로 짠 글쓰기 스웨터를 입어 온기를 감싸 안고 싶다. 그랬다. 우린 단풍 구경을 목전에 두고 실은 월동준비를 하러 석남사에 왔다. 물론 석남사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 앤셔어리 『앤셔어리의 글 라디오』(조그만 북스, 2020) 37쪽 중에서
가을 햇살에 나날이 쪼그라들어 달콤하고 진하게 내려진 대추차가 커밍쑨이다. 넉넉지 않은 양과 부지런히 널고 걷는 손품이 매일 가미된 희소가치가 상종가다. 아무리 소담스럽게 앉아 있는 대추차라 한들 화룡점정 역할을 맡은 두 서넛의 고운 잣이 없다면 유보당한다. 이참에 수제 대추차 위로 둥둥 띄워질 그리운 잣 같은 얼굴들을 셌다.
- 앤셔어리 『앤셔어리의 글 라디오』(조그만 북스, 2020) 67쪽 중에서
글 그릇이 커졌다. 정성을 행한 끝에 과거에 비해 매일 쓰고 많이 써도 소화가 잘 된다. 그리고 가장 고무적인 일은 글과 백지를 미장센으로 삼고 써 내려가도 두렵지 않다는 점이다. 유별을 떨지 않고도 일단 써진다. 그동안의 시간과 노력이 빛을 발하는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 든다.
- 앤셔어리 『앤셔어리의 글 라디오』(조그만 북스, 2020) 102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