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꺼움 Jun 12. 2020

당신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오늘, 책] 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_고재욱



읽은 책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책은 사람과 닮았다. 직장 생활을 통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여러 느낌을 받는 것처럼 책도 그렇다. 스치듯 지나가는 사람, 나와는 결이 맞지 않는 사람, 몇 번을 다시 보고 싶은 사람, 오래 마음에 머무는 사람 등 남기는 감정이 제각각이다. 책 역시 다채로운 감정을 남기고 나를 통과한다. 요즘 마음에서 쉬이 잊히지 않고 머무는 책이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상념을 불러오고, 멍하니 생각에 잠기게 한다. 죽음에 대해서, 늙음에 대해서, 무엇보다 살아 있음에 대해서.


© joseph chan_Unsplash



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



며칠 째 마음을 울렁이게 하는 책은 고재욱 작가의 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웅진지식하우스, 2020)이다. 7년 동안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치매 어르신을 돌봐온 작가가 쓴 산문집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세월이 귀하고 또 귀해서 소중하게 보듬고 싶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치열한 돌봄의 현장에서 어르신 한 분 한 분의 말씀을 귀담아듣고 있는 저자의 모습이 떠오르면 눈물이 난다. 깊은 말을 꺼내 들려주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달뜬 마음이 느껴진다. 누군가 나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주는 순간의 충만함을 알 것 같다.


한 사람의 노인이 죽으면 하나의 박물관이 문을 닫는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내게 수십 개의 박물관이 문을 열고 초대장을 보낸다. 나는 주저 없이 박물관으로 걸어간다. 나는 그곳에서 구석구석 숨겨진 보물을 찾아내고 기록한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이야기를 듣는 일, 수많은 박물관의 서기가 되는 일, 나는 이 일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137쪽)


© Harli  Marten_Unsplash



계절의 변화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야



"아, 벌써 장맛비가 내리네."

절기마다 달라지는 계절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듯 나이가 드는 것도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노인이 된다는 게 아득하게 멀게만 느껴졌다. 그건 계절의 변화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인데 말이다. 어린 시절 엄마로 사는 삶을 상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들의 삶을 짐작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책에 담긴 이야기를 읽고 나서야 서서히 체화한다. 가을에서 겨울이 오듯 나에게도 다가오는 일이라는 것을.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들은 잎사귀를 떨어뜨리고 제 몸에 물을 말리고 있다. 이제 겨울이 올 것이다. 그리고 다시 봄이 그 뒤를 따르겠지. 키 작은 들꽃도 함께 말이다. 그렇게 우리도 들꽃처럼, 누가 봐주지 않아도 꽃을 피울 것이다. 누군가 찬찬히 바라보아 주기를 기다리며.(46쪽)


© Joshua Fuller_Unsplash



나의 태도에 정갈함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치매 어르신들은 기억을 잃어버리면서도 생애 좋았던 순간을 반복하며 살아가신다고 한다. 요양원에 입소한 뒤에도 본래의 성격이나 습관은 사라지지 않는다고도 한다. 어르신 열 분 중에 한 분은 치매에 걸린다고 하면 나라고 예외일 수 없다. 오늘 하루를 살면서 훗날 꺼내서 쓸 수 있는 일상을 메모장에, 다이어리에 적어둔다. 이렇게 각인시킨 추억들이 노인이 된 나의 머릿속에 오래 남길 바란다. 오늘 하루를 살면서 마음가짐을 가지런히 한다. 이렇게 쌓인 날들이 노인이 된 나의 태도에 정갈함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급한 일은 오늘 당장 사랑하는 일, 오늘의 행복을 참지 않는 일이다. 오늘이 세상의 첫날인 것처럼 온통 나와 당신을 사랑하고,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아낌없이 행복해야 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오늘, 지금, 이 순간의 마음뿐이기에. (325쪽)




자꾸 마음에 걸리는 책은 분명 다시 펼치게 되어있다. 삶의 굴곡에서 흔들리고 상처 받을 때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울고, 웃으며 살아갈 힘을 찾을 것이다. 울림이 큰 책일수록 그에 기대에 글을 쓰는 게 조심스럽다. 쓸수록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럼에도 계속 쓰게 되는 이유가 뭘까? 그건 아마도 이름 없는 독자의 책을 향한 정성이 또 다른 독자에게 닿게 될 거라는 믿음 덕분인 것 같다.


당신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 기꺼움
매거진의 이전글 고마운 마음이 서평으로 전해지기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