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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꺼움 Jun 13. 2020

상실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오늘

[오늘, 책] 오늘의 엄마_강진아



엄마와 딸의 이야기라면 



소설 제목에 '엄마' 혹은 '딸'이라는 단어가 포함되면 멈칫한다. 엄마와 딸의 이야기라면 어떤 서사라도 과하게 몰입해서 읽게 되니까. 감정적으로 안정된 상태일 때 책을 펼쳐야 한다. 엄마와 딸이 관계를 맺는 방식은 천차만별이겠지만 여성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에서 보편성을 갖는다. 철이 없을 때는 엄마의 역할로만 엄마를 인식했지만, 언젠가부터 이름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엄마가 보여서 마음이 아린다. 이제야 안다. 밥 한 끼 차려내는 고됨을.  




영화인이 써낸 첫 소설



이제 소개할 오늘의 엄마(민음사, 2020)라는 소설은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스물다섯 번째 책이다. 이 책의 특별함은 등단 작가의 소설이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강진아 감독이 출판사에 투고한 글이라는 점이다. 책이 되어 나오기까지는 제도와 틀에 얽매이지 않았던 눈 밝은 편집자의 역할이 컸다. 영화를 하는 작가가 쓴 소설이라서 그런지 책을 읽으며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과정이 부드러웠다. 첫 문장이 이끄는 대로 소설 속으로 성큼성큼 들어간다. 한국의 현대문학의 매력은 이질감 없이 소설에 푹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고전이나 외국 소설을 읽을 때면 이야기 언저리에서 한참을 맴돌곤 한다.)


강진아 영화감독, 소설가




사그라드는 엄마의 곁을 지키는 일



소설의 화자는 '정아'라는 20대 후반의 일러스트레이터다. 오래 사귄 연인을 사고로 잃은 지 3년, 내내 위태롭고 여전히 휘청거린다. 그런 일상의 어느 날 걸려온 언니 정미의 전화 한 통, 엄마의 건강검진 결과가 이상하다고? 자매의 엄마 박선희 씨는 폐암 말기 진단을 받게 된다. 그때부터 아픈 엄마를 돌보는 일과가 반복된다. 병원이 집처럼 익숙해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짧다. 줄거리만 들었을 때 뻔한 소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소설은 눈물샘을 자극하는 신파로 흐르지 않는다. 사그라드는 엄마의 곁을 지키며 겪는 복잡한 감정의 결을 세밀하게 풀어낸다. 상반된 성격의 자매가 겪는 갈등은 현실에 있을 법하다.


고요한 복도는 어둡다. 언니는 목소리를 낮추며 정아에게 쏘아붙인다.

"이래 할래?"
"미안."
"니 술 마셨나?"
"맥주 쪼금."
"더 마시지, 뭐 하러 왔노."
"미안."
"니는 진짜 끝까지 이라노."

정아는 할 말이 솟구치지만 연락 없이 늦은 오늘의 죄에 발목이 잡혀 고개를 푹 숙이고만 있다. 한참을 씩씩거리던 언니는 마지막 마침표를 찍을 문장을 드디어 찾아낸 모양이다.

"엄마 돌아가시면, 니 안 보고 살 거다." (134쪽)


© Marcelo Leal_Unsplash




상실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오늘



엄마를 떠나보내는 과정에서 비로소 연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정아를 보며 생각했다. 상실의 사전적인 정의는 뭔가를 잃어버린다는 것이지만, 어쩌면 상실은 잃어버린 뒤 그것을 끌어안는 행위까지 포함시켜야 하는 게 아닐까? 잃어버렸을 때는 되찾고 싶어서 견디기 어렵지만, 잃어버린 것을 받아 들이고 품는다면 우리는 다시 견디며 살아갈 수 있으니까. 소설에는 작가의 실제 경험이 많이 투영되었다고 한다. 이 소설의 완성이 강진아 작가가 엄마를 잃은 지독한 상실을 끌어안은 방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건 그 눈꺼풀 안에 엄마가 없다는 사실이다. 분명 엄마가 있었는데, 없어졌다. 정아는 그 변화에 새삼 놀라는 중이다. 조금 전까지 여기서 칙, 크, 시끄럽게 산소를 들이키던 엄마는 어디로 간 걸까. 퉁퉁 부은 몸을 여기다가 벗어 놓고 대체 어디로 가 버렸을까. 어디 가면 한 번쯤은 돌아올 법도 한데 엄마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263쪽)





책을 덮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시시콜콜한 대화가 오가는 통화였지만, 엄마와 나누는 시간의 무게가 평소와 달랐다. 언젠가 내가 애타게 그리워하게 될 순간임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으니까. 자칫하면 놓치고 말았을 일상의 조각을 움켜쥘 수 있었던 건 모두 책 덕분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의 엄마를 깊게 새겼다.



다정한 사람들은 다정함을 거두는 방식으로 서로를 등지지만, 다정하지 않은 사람들은 '오지 마라' '안 보고 살 거다'라는 말로도 서로를 밀어낼 수 없음을. 우리의 오늘은, 오늘의 당신은 기적이다.

- 최진영(소설가) 추천사 중에서


© 기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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