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의 기쁨과 슬픔

2020년 7월 20일 새벽 공간 넷

by 기꺼움

새벽 일기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새벽이다. 어제 일찍 잠들어서 그런지 알람이 울리자마자 가뿐하게 일어났다. 출근하는 날이지만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 삼시세끼를 걱정하는 주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물론 고민만 하다가 한 끼는 배달 음식으로 때우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매 끼니가 신경 쓰이는 건 사실이다.



일요일 하루만 보더라도 그렇다.



아이들은 주중에는 몇 번을 깨워도 못 일어나지만 주말엔 깨우지 않아도 일어나서 TV를 틀고 소파를 차지하고 있다. 조금 더 자고 싶지만 뭐든 먹여야 하니까 일어나서 쌀을 씻는다. 냉장고를 열고 어떤 재료가 있는지 살핀다. 그때그때 조금씩 사서 먹는 편이라 별게 없다. 단골 재료인 달걀을 꺼내고 베란다에서 햇감자를 가져온다(시골에서 한 상자 보내주셨다). 감자를 썰고 있는데, 잠이 깬 남편은 라면을 먹자고 했다. 아침은 감자 달걀 볶음밥과 라면이다.


먹고 설거지를 하고 나면 10시가 훌쩍 넘는다. 살림하는 손이 더딘 편이라 시간이 꽤 걸린다. 겨우 침대로 들어가 책을 읽고 있으면 아이들의 호출이 이어진다. "엄마!"하며 외치는 소리를 여섯 번쯤 듣고 나면 금세 점심시간이다. 이제 뭘 먹어야 하나 고민하며 다시 냉장고 앞에 선다. 신선 칸에서 가지를 꺼내고 베란다 감자에게로 향한다. 남편에게 오이를 사다 달라고 부탁하고 국수 삶을 물을 끓인다. 점심은 가지, 감자 부침개와 오이 비빔국수다.


아침에서 점심은 금방이지만 점심을 먹고 나면 약간의 여유가 생긴다. 아이들은 몸이 근질근질한지 계속 나가지고 한다. 코로나 이후로는 영화관도 서점도 키즈카페도 갈 수 없으니 결국 놀이터뿐이다. 아이들은 인라인을 들고 밖으로 나갔고, 남편도 따라나섰다. 주말 낮에 찾아온 고요가 좋다. 서둘러 청소기를 돌리고 소파에 누워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그것도 잠시 땀을 흘리고 들어온 아이들을 한바탕 씻기고 나면 저녁 메뉴 고민이 시작된다. "치킨이나 시켜먹을까?"라는 남편의 말에 반색했다.


말이 날아갈세라 재빨리 배달앱을 열어 치킨을 시켰다. 그사이 쌀을 씻어 밥을 하고, 감자를 삶는다. 치킨만 먹이기 미안한 마음을 밥과 감자에 담았다(쓰면서 보니 감자의 역할이 상당하다). 배달 음식을 시켜도 상을 차리고 치우는 일은 해야 한다. 물론 한 끼를 온전히 차리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드디어 저녁 식사까지 해결하고 같이 복면가왕을 본다.

3연승에 성공한 장미여사 (© 복면가왕 264회)

동생 : 누나, 누나가 먼저 가왕하고 있으면, 내가 나가서 누나를 깰 깨!

누나 : 내가 이기면?

동생 : 그럼 어쩔 수 없지. 누나가 2연승 하는 거지.



복면가왕에 신청만 하면 나갈 수 있다고 믿는 아이들의 호기로운 대화에 웃는다. 노래 실력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놀랍지만 스스로 깨닫게 될 때까지는 그 기분을 만끽하길 바라며 허무맹랑한 대화에 동참한다.


일기를 시작할 때는 삼시세끼의 고단함이라고 적었는데, 일기를 다 쓰고 보니 고단함이라는 기름기는 빠지고 보통의 일상이 주는 기쁨이 보이는 듯해서 제목을 바꿨다. 삼시세끼의 기쁨과 슬픔으로. 주말에 짬짬이 읽은 책은 김애란 소설가의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열림원,2019)이었다. 말과 글의 힘에 대한 문장을 읽으며 정확한 표현에 공감했는데 나에게는 오늘의 일기가 그렇다. 마음이 괜찮아지는 신비.


말과 글의 힘 중에 하나는 뭔가 '그럴' 때, 다만 '그렇다'라고만 말해도
마음이 괜찮아지는 신비에 있지 않을까
- 김애란 『잊기 좋은 이름』 (열림원, 2019) 중에서



새벽 문장



작가들은 그 말 주위를 부지런히 싸돌아다닌다. 삶이 가진 진부함의 잔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면서. 그러다 가끔은 말들의 뒤뚱거림 속에서 또 새로운 박자를 발견해가면서 말이다.


-김애란 『잊기 좋은 이름』(열림원, 2019)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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