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넘기듯 가을로 넘어갈 수는 없으니까
서준아!
오늘 아침 맑은 하늘을 보며 둘이 감탄했는데, 오후가 될수록 탁해지고 구름은 무거워졌어. 내일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 휴가를 떠나시는 엄마의 계장님은 종일 태풍을 걱정하셨어. 진짜 여름인가 봐. 이제 열대야도 기승을 부리겠지. 8월이 오기 전에 우리도 휴가를 다녀오자. 하루는 멀지 않은 수영장에 가고 하루는 찜질방에서 여유 있게 놀까? 어디든 사람이 많지 않은 곳이면 좋겠어.
엄마는 여름이 별로야. 날씨가 너무 더우면 쉽게 지치고, 기운이 없어. 잊지 않고 찾아오는 여름 감기도 매년 엄마를 힘들게 하지. 물론 서준이는 여름을 좋아해. 아이스크림을 매일 먹고, 물놀이를 할 수 있어서 그렇겠지? 계절을 만끽하는 어린 네가 참 예뻐.
엄마도 여름이 좋은 점을 꼽아봐야겠다. 책장을 넘기듯 가을로 넘어갈 수는 없으니까. 여름날 저녁에 선선하게 부는 바람이 좋아. 시원한 수박과 눈꽃 빙수는 정말 맛있지. 평소보다 길게 휴가를 다녀올 수 있어서 감사해. 아! 좋은 게 하나 더 생겼어. 여름 동요를 부르는 서준이를 좋아해.
<싱그러운 여름> 햇볕 쨍쨍 여름 오후 장난꾸러기들 / 맑고 푸른 냇가에서 물장구를 치네 / 송사리 잡으러 살금 다가서니 / 꼬리를 살랑 흔들며 멀리 달아나네 / 할아버지 원두막에 참외 익어가는 / 싱그러운 여름날이 정말 즐거워요
어제 퇴근길이었어. 더위와 습기를 머금은 차에서 나오는 뜨거운 에어컨 바람이 찜찜하던 순간이었지. 서준이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는 거야. 정성껏 또박또박 동요를 부르는 서준이 입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노랫소리는 차 안의 공기를 바꾸고, 엄마의 기분을 가뿐하게 했단다.
서준아 역시 모든 건 마음에 달려있나 봐. 서준이에게 편지를 쓰고 나니 여름이 살짝 좋아지기 시작하네. 맞아. 어떤 일이든 좋고 나쁨을 동시에 가지고 있고, 결국 마음이 어떻게 통과시키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니까. 우리 나쁜 건 걸러내고 좋은 점을 보는 사람이 되자.
세상을 살아가는데 이 능력만 장착할 수 있다면 한때 서준이의 장래희망인 스파이더맨의 거미줄에 버금가는 무기가 될 거라고 확신해. 엄마가 여름이 좋은 이유를 찾았던 것처럼 매일 연습해볼까? 여섯 살 서준이는 야채의 좋은 점부터 찾아보자!
2019년 뜨거운 여름을 통과하며 아이들에게 매일 쓴 편지를 책으로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