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털을 세운 고슴도치 같은 날들

2020년 8월 7일 새벽 공간 열여덟

by 기꺼움




새벽 일기



나는 익숙한 게 좋다. 먹어본 음식, 가봤던 장소,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 주는 편안함을 선호한다. 심지어 책도 그렇다. 집에 있는 책들은 대부분 소설과 에세이 종류다. 낯선 상황에서는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쉽게 예민해진다. 가시털을 바짝 곤두세우는 고슴도치 같다고 해야 할까.


회사에서 자리 이동을 하게 되었다. 예상했었지만 시기적으로 앞당겨졌다. 오랫동안 이동 없이 일했기 때문에 코앞으로 다가온 변화에 두려움이 앞선다. 학년이 바뀌고 새로운 교실 앞에서 머뭇거리는 아이가 된 기분이다. 밤새 제대로 잠을 못 잤다. "엄마, 물 줘!" 하는 목소리에 바로 일어났을 만큼 얕은 잠을 잤다.


막상 가면 똑같다고 금방 익숙해질 거라고 남편은 말한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그렇지만 머리로는 아는데 몸이 잘 안 되는 걸 어떡하나. 번지점프를 생각해보자. 점프대 위에서 두렵지 않은 사람은 없지만 행동하는 모습은 제각각이지 않는가. 나는 바들바들 떨다가 점프대 위에 서지도 못할 것이다.




일기라고 하지만 공개하는 글이기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비문을 살피고, 오타에 흠칫 놀란다.) 매일 쓰는 글이 풀메이크업은 아니더라도 파운데이션 정도는 바르고 있다는 걸 안다. 그런데 오늘은 인사이동에 대한 생각에 압도돼서 쓸 말이 없었다. 다른 이야기를 꺼내볼까 했는데도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날것의 마음을 주저리주저리 적고 있다.


글을 쓰는데 자꾸 김신회 작가의 『심심과 열심』에서 만난 문장이 떠오른다. 그것은 마음을 울리는 문장이 아닌 마음을 콕콕 찌르는 문장이었다.

에세이를 쓸 때 중요한 것은 첫 문장보다 마지막 문장이다. 에세이는 일상의 깨달음에 대해 쓰는 글인 만큼 첫 문장이 떡 벌어질수록 뒷 이야기가 초라하게 느껴질 수 있다. 첫 문장에 들인 힘을 끝까지 유지하면서 지나치게 비장한 다짐과 교훈으로 점철된 글이 완성되기도 한다.


작가가 예로 들어준 끝 문장을 옮겨보면 이렇다.

1. 오늘의 경험을 통해 일상은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늘의 깨달음 밝히기.)
2. 이 마음을 잊지 않고 더 나은 내가 되어야겠다. (되고 싶은 나에 대해 말하기.)
3. 앞으로도 이 같은 열정을 계속 간직하고 싶다. (간직하고 싶은 것 굳이 알려주기.)
4.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고 싶다. (갑자기 분위기 종교 집회.)
5. 나는 느꼈다.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그만해.......)


이 예시를 읽으며 내가 썼던 수많은 마지막 문장이 스치고 지나갔다.(다시 읽어보면 고치고 싶을 테고, 고치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을 테니 추억 속에 남겨 둬야지.) 물론 김신회 작가 또한 교훈적으로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쓸모없고, 자질구레한 이야기도 괜찮다고. 쓸모없음이 바로 쓸모라고 했다.


『심심과 열심』을 읽는 중이 아니었다면 "나는 익숙한 게 좋다"로 시작한 일기의 마지막 문장은 아마도 이랬을 것이다. "앞으로도 크고 작은 변화를 마주하겠지? 조금 더 유연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내면의 힘을 키워야겠다."고 싶은 나에 대해 말하며 깨달음을 주는 방식으로 끝맺음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오늘은 힘을 빼고 책에서 배운 대로 써봐야겠다.



아무리 금세 익숙해진다고 해도 나는 긴장되고 떨린다. 오늘부터 발령이 날 때까지. 아니 발령이 나고 적응될 때까지 고슴도치 같은 날들을 보낼 것이다. 어쩔 수 없다. 그게 나니까.




새벽 문장



일기는 가끔 우리의 일상을 구원한다. 언제 모아 뒀는지도 몰랐던 마음속 이야기는 에세이의 글감이 되기도 한다.


모든 일기는 에세이의 초고다. 초고는 총알이다. 쌓여가는 일기장을 볼 때마다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나한테는 총알이 이만큼 있어.



- 김신회 『심심과 열심』(민음사, 2020)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