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휴직을 결정했다. 대입과 취업 결혼 육아까지 쉼 없이 달려왔던 내게 ‘멈춤’의 시간이 주어졌다. 출산 이후에도 휴직 없이 출근했던 나였다. 승진, 보직, 돈 어느 하나도 놓지 못했고, 악착 같이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가정보다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큰 아이는 친정 엄마께, 둘째는 돌봐주실 이모님을 구해 맡겼다. 그렇게 10년 이란 시간이 흘렀다. 끊임없이 요구되는 엄마의 역할과 쏟아지는 일을 감내하며 살다 보니 정작 나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밀려드는 허무에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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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틈틈이 읽은 책에 기대서 서평을 썼다. 책의 이야기는 점차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삶의 이야기로 확장되었다. 타인의 평가에 연연했던 삶이 나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기분이 들었다.당장 부서질 것 같던 마음은 차츰 단단해졌고, 허겁지겁 쫓기에 바빴던 가치들의 크기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정혜윤 PD를 만났다. 『삶을 바꾸는 책 읽기』를 처음으로 『뜻밖의 좋은 일』, 『마술 라디오』, 『아무튼, 메모』까지 그가 쓴 책을 한 권 한 권 읽어 나갔다. 책이 삶이 되는 이야기, 사람이 삶이 되는 이야기, 메모가 삶이 되는 이야기. 빛나는 이야기들이 마음에 쌓이면서 세상을 향한 고집스러운 관점 여기저기에 균열이 생겼고, 결정적으로『사생활의 천재들』을 읽으며 내 안에 무언가 "부서져 열리고' 있음을 느꼈다.
휴직을 결정하고 잠들지 못했던 새벽 『사생활의 천재들』을 읽었다. 회사에는 말을 꺼내지 않은 상황이었고, 얼마든지 번복할 수 있었기에 매 순간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 내게 책 속의 문장들이 말했다.“잘했어. 잘한 거야. 마음먹은 대로 밀고 나가 봐. 멋진 결정이라고 생각해.” 이건 단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그날 새벽 책은 분명 나를 위로했고, 응원했다. 경로를 살짝 벗어난 내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 아무것도 모르지만, 알 수 없기에 맞는 길이라고 믿어 본다. 목적지가 없는 길 위에 서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고, 새소리를 듣고,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걸어갈 것이다. 정혜윤 PD가 전해준 여덟 명의 사람들의 여덟 가지 이야기에 의지해볼 생각이다.
그들은 하나뿐인 자신의 무기가 뭔지 알고 있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자기 자신을 무한히 활용한다. 자기 자신의 삶을 제대로 한번 살아보기 위해서. 그들은 먼 미래에 자신에게 주어질 최대 행복을 생각하지 않는다. (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