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운 독서에세이
1980년 광주로부터 멀어진 시간이 오늘과 맞닿는다. 그러한 시간의 흐름이 무색할 만큼 겹겹이 쌓아 올린 슬픔에 짓눌려 여전히 동호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다. 엄마, 엄마다. 집에 가자고 물에 빠진 사람처럼 동호의 손을 끌어당기던, 다 같이 저녁밥 먹게 들어오라던 동호의 엄마. 그녀의 시간은 그때에 멈춰버렸다. 봄이 오면 미치고, 여름이 오면 내내 앓다가 다시 가을, 겨울이 지나 또 봄이 오는 수십 년의 시간이 허망하다. 자식을 잃은 비통함 만큼 더한 고문이 있을까, 그날이 남긴 어떤 고통보다 가장 참혹하다. 한 문장을 읽어내려면 숨을 눌러야 한다. 피 끓는 애통함이 마음 깊이 들어와 요동친다.
그날 해 질 녘에 느이 아부지 어깨를 짚고 절름절름 옥상에 올라갔다이. 난간에 기대서서 현수막을 길게 내리고 소리 질렀다이. 내 아들을 살려내라아. 살인마 전두환을 찢어죽이자아. 정수리까지 피가 뜨거워지게 소리 질렀다이.(189쪽)
괴로움을 견디며 꾹꾹 눌러왔던 감정은 192페이지 첫 번째 문단에서 넘어져 무너지고 만다. “네 중학교 학생증에서 사진만 오려갖고 지갑 속에 넣어놨다이. 낮이나 밤이나 텅 빈 집이지마는 아무도 찾아올 일 없는 새벽에, 하얀 습자지로 여러번 접어 싸놓은 네 얼굴을 펼쳐본다이. 아무도 엿들을 사람이 없지마는 가만가만 부른다이. ······동호야.”(192쪽) 이 문장을 읽는다면 누구도 1980년 광주를 지난 일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동호가 죽은 그날에 엄마의 시계는 멈춰버렸다. 결코 과거가 아니라는 것, 그날이 남긴 처절한 고통 안에서 삶을 이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 어쩌면 계속 반복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중요한 진실이 아닐까.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207쪽)
올해로 518광주민주화운동은 40주년을 맞았다. 기념식 생중계를 영상 속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옛 전남도청을 가득 메우며 울려 퍼질 때 그날 피 흘렸던 수많은 동호들을 생각했다. 소년이 온다. 동호가 온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제대로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이리라. 2020년 5월 『소년이 온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조용히 읊조렸다.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