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의 천재들'을 읽고 쓰다 [에필로그, 다시]

기꺼운 독서에세이

by 기꺼움



[에필로그] 다시



책을 펼치던 순간과 책을 덮는 오늘 많은 것이 달라졌다. 직장에 다니는 딸을 위해 10년 가까이 손녀를 돌봐왔던 친정 엄마는 여유를 찾으셨다. 최근에는 500피스 퍼즐에 푹 빠져 계신다. 어린이집이 휴원을 해도 긴급 보육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둘째는 코로나가 재확산되면서 집에 돌본다. 종일 두 아이와 함께 보내는 게 만만치 않지만, 마음을 짓누르던 죄책감이 사라졌다. 하루는 생각보다 짧아서 여전히 새벽에 일어나 글 쓰고, 공부하지만 출근에 대한 부담이 없으니 가뿐하다.



책은 이제 단순히 읽는 즐거움 이상이다. 차곡차곡 마음에 쌓인 책들은 무수히 마주치는 선택의 순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휴직을 결정하는 데도 '사생활의 천재들'이란 책을 통해 만난 여덟 명의 사람들(아니 스승들)이 더없는 용기를 주었다.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알게 했고, 삶에서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했다. 정신없이 앞뒤 돌아보느라 애쓰지 말고, 내가 낼 수 있는 적정한 속도대로 인생을 살자.


Photo by Simon Rae on Unsplash


책의 서문에서 정혜윤 PD는 ‘다시’라는 말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했다. 아름다움의 역사에 가장 먼저 포함시킬 만한 단어라고. 나는 ‘다시’라는 단어를 품고 서 있다. 물론 무엇을 어떻게 다시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그것은 생각일 수도, 행동일 수도, 삶일 수도 있을 테지. 지금은 그저 일상을 ‘다시’ 꾸리는 것으로 시작하는 중이다. '직업'이라는 역할을 잠시 비워내고, 그 공간을 좋아하는 일로 채워가고 있다. 이뤄야 할 목표가 없기에 불안과 걱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정혜윤 PD의 또 다른 책 『삶을 바꾸는 책 읽기』(2012, 민음사)에도 마음을 움직이는 많은 이야기가 있다. 그중 이 글의 끝에 붙여두고 싶은 문장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우리 삶에는 무한한 갈림길이 있고 그 갈림길마다 책들이 놓일 수 있다는 내용이다. 여름의 끝자락에 마주친 갈림길 위에 '사생활의 천재들'을 가만히 내려놓는다.


책 하나하나가 우리를 부르는 영혼이고 인간 하나하나가 서로를 부르는 영혼입니다. 내 옆에 가까이 있는 것, 내가 가까이 두고자 하는 것, 나와 연결되어 있는 것, 나와 협력하는 것,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나를 무한히 창조합니다. 우리 삶은 무한히, 끝없이 갈라지는 길과도 같습니다. 그 갈림길마다 책들이 놓여 있을 수 있습니다. 목마른 나그네를 위한 하나의 이정표처럼, 하나의 쉼터처럼.

- 정혜윤 『삶을 바꾸는 책 읽기』(2012, 민음사) 중에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