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아, 안녕.
오늘은 종일 비가 성실하게 오더니 늦은 오후부터는 빗줄기가 세졌어. 서준이는 어린이집에서 하기로 한 물놀이가 취소돼서 속상해했지. 뾰로통해진 서준이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엄마는 서준이 어릴 적 이야기를 하나 해줬어.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하는 것을 언제나 좋아하는 서준이니까.
서준이가 두 살 때 일이야. 그때는 외할머니가 서준이를 돌봐주셨거든. 아빠가 퇴근 길에 할머니 집에 들러서 서준이를 데리고 왔지. 서준이와 함께 집에 도착한 아빠의 얼굴이 환해져 있더라. 서준이를 바라보는 눈에서는 꿀이 뚝뚝 떨어지고 말이야.
엄마는 아빠에게 기분이 좋은 이유를 물었지. 아빠는 웃음을 머금고 얘기를 들려줬어. 할머니 집에 도착해서 현관문을 열었는데, 놀고 있던 서준이가 반갑게 일어나 뒤뚱뒤뚱 걸어오더니 아빠한테 안겼대(14개월이니까 이제 막 걷기 시작할 즈음이었지). 그런데 아빠 품에 안긴 서준이가 머리를 어깨에 기대더니 토닥토닥해주더라는 거야.
고사리 같이 작은 손으로 토닥이는 피로가 다 풀리더래. 서준아, 살다 보면 어떤 날은 유독 더 힘든 날이 있는데, 아빠가 그런 하루였나 봐. "진짜 내 편이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며 어찌나 뿌듯해하지. "서준아, 엄마는?" 하며 가벼운 질투를 했지만, 엄마도 덩달아 행복했던 기억이 나. 덕분에 엄마 컴퓨터 폴더 안에는 '토닥토닥'이라는 제목의 꽤 오글거리는 시도 저장되어 있단다.
두 살 서준이의 이야기를 여섯 살 서준이는 귀를 쫑긋하고 들었어. 물놀이의 서운함은 금세 잊어버린 것 같았지(작전 성공이야). 이제 여섯 살이 된 서준이는 에너지가 넘치는 장난꾸러기야. 서준이와 놀다 보면 기운이 쏙 빠져. 물론 한 번씩 엄마를 스르르 녹이는 다정함은 여전해.
지난 주말에는 침대에 누워 있는 엄마한테 와서 뽀뽀를 일곱 번을 하더니 "빨. 주. 노. 초. 파. 남. 보!"라고 하더라. 세상에, 무지개 뽀뽀라니. 어떻게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어? 이런 서준이의 다정함까지 무럭무럭 자랄 수 있도록 엄마가 사랑을 많이 줄게. 소중한 이들에게 다정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엄마의 편지를 읽고 있는 서준이는 몇 살일까? 얼마나, 어떻게 자랐을지 참 궁금해지는 오늘이네.
2019년 뜨거운 여름을 통과하며 아이들에게 매일 쓴 편지를 책으로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