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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꺼움 Jan 26. 2021

아버지가, 아버지 하고 울었다

박준 「종암동」

2018년 겨울, 박준 시인의 시집을 읽으며 걷던 중이었어요. 종암동이라는 시에서 툭하고 눈물이 났습니다. 갑작스러운 눈물에 당황했던 기억이 나요. 시를 읽고 운 것은 처음이었으니까요.




4연으로 이뤄진 짧은 시입니다. 달빛을 받은 조약돌을 보며 걸어가듯 시인이 내려놓은 문장들을 따르다가 아버지의 마음을 만나 울컥했어요. 혼자 사는 아들 집에 온 아버지가 자신의 아버지 냄새가 반가워서 눈물을 흘립니다. "아버지가, 아버지 하고 울"고 있습니다. 마지막 연은 독자로 하여금 공간 이동을 가능하게 합니다. 쉼표의 쓰임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시를 읽던 제가, 울고 있는 아버지 곁에 서있습니다.


좀처럼 외출을 하지 않는 아버지가
어느 날 내 집 앞에 와 계셨다

현관에 들어선 아버지는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눈물부터 흘렸다

왜 우시냐고 물으니
사십 년 전 종암동 개천가에 홀로 살던
할아버지 냄새가 풍겨와 반가워서 그런다고 했다

아버지가 아버지, 하고 울었다



- 박준,「종암동」(『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문학과 지성사, 2018)



'좀처럼 외출을 하지 않는 아버지'에서 떠오르는 무심한 이미지와 '할아버지 냄새'가 불러왔을 그리움의 감각이 만나면서 애틋해집니다. 특정한 냄새가 우리의 기억을 불러오는 감각을 잘 알고 있습니다. 후각은 뇌의 감정과 기억 중추에 가까운 영역이 담당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후각이 자극되어 불러오는 기억의 생생함을 떠올린다면 '아버지, 하고 울'던 아버지의 마음에 동화될 수밖에요. 우리는 각자 다른 듯 살아가지만, 때때로 비슷한 감정을 나누곤 하니까요.


신형철 평론가는 박준 시인을 '과거가 현재에 도착한다'고 말해야 하는 상황을 그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과거는 더 먼 과거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지금 이곳으로 거슬러 올라온다는 것이 박준의 시간관이라고요. 아버지가 떠올라 눈물 흘리는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며 시적 화자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같이 울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같이 우는 마음으로 쓴 시이기에 독자에게 닿았겠지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박준 시인은 놀라워요. 놓치고 지나칠 수 있는 어떤 상황도 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거든요. 그 찰나를 세심하게 포착해서 언어로 그려낼 수 있다니. 냉장고 속에 있던 평범한 재료가 정성 어린 집밥이 되고, 어디서도 느끼지 못할 따스함을 주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그의 시 안에 있으며 누군가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거든요. 표현하기 어려운 애잔함이 깔려 있지만, 많이 슬프지는 않아요. 다독여주는 마음과 손길을 느껴요.




박준 시인의 다른 시들에 관해서는 앞으로 천천히 말해보려고요. 시를 읽고 글을 쓰는 일은 정말 어렵지만, 언젠가 잘 해내고 싶은 일이에요. 시를 읽고 쓰는 날들이 쌓이다 보면 시가 품는 비밀을 문장으로 옮겨낼 수 있을까요. 오늘도 그런 바람으로 끄적였습니다.



아버지가 아버지, 하고 울었다 (박준, 종암동」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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