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기억하는 일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끝까지 해내셨던 분들을 본받았으면 해

by 기꺼움

서준아.


요즘 엄마는 참 좋아. 올해부터 서준이가 엄마 회사가 있는 직장 어린이집으로 옮겼기 때문이지. 서준이는 100일 때부터 이모님이 돌봐주셨으니까 그동안 우리는 저녁이 돼서야 만날 수 있었잖아. 이제 엄마 사무실 창가에서 서준이가 지내고 있는 어린이집이 보이니까 우리가 아주 가까이 연결되어 있는 기분이야. 일을 하다 한숨 돌리며 스트레칭을 할 때, 점심을 먹고 화장실에서 양치를 할 때 한참씩 쳐다보고 있는단다. 너는 모르겠지만 가끔 "안녕!"하고 손을 흔들 때도 있어.




무엇보다 좋은 건 출퇴근길이야. 꽉 막힌 도로 위에서 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 지루할 틈이 없거든(특히 깜빡이도 안 넣고 끼어드는 자동차를 혼내 줄 때는 진짜 통쾌해). 하지만 얼마 전 네가 독재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흠칫 놀랐어.


엄마! 독재자는 자기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해서 마음 편한 세상을 만드는 거야.


알고 보니 도라에몽이란 만화에서 나온 에피소드를 보고 꺼낸 말이었지만, 엄마는 그 순간 역사를 바르게 알려줄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


쉿! 엄마가 비밀 하나 말해줄게, 사실 엄마는 역사를 싫어해. 책을 많이 좋아하지만, 역사책은 거의 읽지 않았을 정도야. 엄마가 학교에 다닐 적에 시험을 위해 국사와 세계사를 달달 외웠던 기억이 그리 달갑지 않거든. 그런데 말이야. 올해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0주년이 되었다고 하더라. 엄마가 임시정부에 대해 아는 건 '3.1 운동 이후 독립운동가들이 중국 상해에 세운 정부' 고작 한 줄 뿐이었어. 네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역사를 알아야겠다 싶었지.


임시정부를 기록한 가장 훌륭한 사료라는 백범일지를 필사하기 시작했어. 매일 새벽 필사는 3개월 동안 계속되었어. 나라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치신 김구 선생님의 문장을 따라가며 많이 슬프고, 아팠어. 한 글자 한 글자 필사를 하면서 배운 건, 역사는 외우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는 거야. 그렇게 역사를 생생하게 느끼고 실감하면서 엄마는 달라졌단다. 스마트폰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역사를 감흥 없는 표정으로 설명하는 게 아니라, 슬프고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역사 속 인물들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거든.




서준이도 엄마의 변화를 느끼는 걸까? 김구 선생님을 친근하게 생각하고, 계백 장군, 이순신 장군, 안중근, 유관순 등 위인들에 푹 빠진 모습을 보고 있으면 흐뭇해. 역사는 우리가 기억해야 존재할 수 있으니까. 여섯 살 서준이 마음에 심어진 역사의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서,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끝까지 해내셨던 분들을 본받았으면 해. 너무 거창한가? 어쨌든, 엄마는 서준이와 아침저녁으로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해(도착하기 전에 안전벨트를 푸는 것만 빼면).


2019년 뜨거운 여름을 통과하며 아이들에게 매일 쓴 편지를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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