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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꺼움 Dec 14. 2019

[오늘, 책]돌아오는 새벽은 아무런 답이 아니다_진서하

詩처럼 다가온다

늘 헤매는 저에게 각자의 온기와 조각을 보태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당신으로 하여금 내가 되고, 종종 당신은 나의 글이 됩니다. - 진서하 『돌아오는 새벽은 아무런 답이 아니다』 123쪽 중에서


독립출판물이다. 책읽아웃 공개방송에서 정세랑 작가가 언급한 책이었다. 마음에 두고 있다가 올해를 보내며 읽었다. 엊그제 팟캐스트에서 페르난도 페소아의 '불안의 서'라는 책의 낭독을 듣고 있는데, 아주 여러 번 이 책이 오버랩되었다. 페소아는 말한다. 시인이란 자신과의 불화를 힘겹게 끌고 가는 사람이라고.


책의 저자는 심연에서 길어올린 문장으로 자신의 내면을 표현한다. 섣부르게 읽는 이의 공감을 의도하지 않는다. 작가는 쓰고, 독자는 읽는 과정에서 눈에 밟히는 문장들을 도처에서 만날 수 있다. 담담하면서도 치열하게 스스로를 파고들었으리라 짐작되는 글이다.


'당신에게'라는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작가는 '편안한 문장들은 아니었을 거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고 말했다. 그렇다. 편안한 문장이 아니었다(역설적이지만, 편안한 문장이 아니어서 좋았다). 그건 책 속의 문장이 詩처럼 다가와서 머리가 아닌 가슴에 흔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실은 이런 책을 읽고 있으면 한동안은 부러운 마음이 된다. 내가 써낼 수 없는 형태의 글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시집을 앞에 두고 달리 쓸 수 있는 말을 찾지 못해 헤매는 것처럼. 『돌아오는 새벽은 아무런 답이 아니다』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그저 작가의 깊은 문장을 옮기는 수밖에 없다.




홀로 방에 앉아 너를 생각할 때에 차오르는 내 슬픔은 비린내를 풍겼다. 바짝 말려 널어두자. 곧 부는 바람에 날려 보내야지. 내가 나를 어르고 달래기를 수 날. 답이 무엇인지 알면서 백지로 남겨두기를 수 번. 의도된 포기만이 거듭되던 날들. 이내 당신의 물가에 털썩 주저앉아 버리는 일이 매일.

- 진서하 『돌아오는 새벽은 아무런 답이 아니다』 45쪽 중에서


즐겁지 않은 순간에 즐거운 척하지 않기를, 무례함을 무방비로 맞이한 채 흘려보내지 않기를, 결코 알 수 없는 당신의 과거를 내 멋대로 정의하지 않기를, 도처에 산재한 상처들 중 어느 하나도 가벼이 여기지 않기를, 혹여 그런 나를 마주하더라도 도망가지 않기를, 돌이켜봤을 때 결코 반갑지 않은 순간들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를, 반복되어 결국 내 자신이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수신인 없는 기도가 매일 거듭된다.    

밤은 계속된다.
돌아오는 새벽은 아무런 답이 아니다.

- 진서하 『돌아오는 새벽은 아무런 답이 아니다』 104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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