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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꺼움 Dec 25. 2019

[오늘, 책] 책섬_김한민

책을 '짓는'이의 최선

 

  『책섬』은 그림을 그리고, 책을 쓰고, 포르투갈의 시인 페르난도 페소아를 연구·번역하는 작가 김한민의 그림책이다. 내 책장에는 그가 쓰고, 작업한 책 세 권이 꽂혀있다. 『아무튼, 비건』(위고, 2018)과 페르난도 페소아의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민음사, 2018) 그리고 '책섬'이 그것이다. 작업의 다양성은 물론 동물권이나 환경 보호라는 실천적인 과제도 행동으로 보여주는 작가다. 닮고 싶은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작가이기도 하다.



  '책섬'은 책을 짓는 과정을 고독하지만 위트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노트북 앞에 앉아서 글을 쓰는 전형적인 작가의 모습은 잠시 접어두고, 상상해야 한다.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이 책의 외관을 갖추고, 문장이 쓰이고 한 권의 책이 되는 모습을. 조각을 한다고 생각하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수십 년을 이렇게 책을 지으며 살아온 '저자'는 이 기술을 전수해 줄 '독자'를 찾는다. 책을 미끼로 달아 놓고 독자를 기다린 끝에 낚아 올린 사람은 어린아이였다. (※ 상상하지 않으면 이 글의 문장이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음을 밝힙니다.) 눈이 멀어서 책을 일지 못하지만, '책을 펼칠 때의 느낌과 덮을 때의 느낌을 못 견디게 좋아하는' 아이다. 저자는 아이를 데리고 무인도로 가서 땅을 파기 시작한다. 아이는 묻는다. "책은요?"라고 묻는 아이에게 저자는 답한다. "책? 지금 하고 있잖아? 파다 보면 알게 돼. 파는 게 반이야, 책은" 이렇게 그들의 책 짓기가 시작되는데·····.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번뜩이는 상상과 표현들이 담겨있다. 천천히 봐도 한 시간 남짓이면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이다. 책을 짓는 이의 최선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았고, 마음을 환기하고 싶을 때 자주 펼쳐보게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오래오래 붙잡고 싶은 '걸려 넘어지'게 만드는 문장이 많다. 무엇보다 책의 물성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반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전 사실 읽지 못해요. 눈이 멀었거든요. 완전히 멀진 않았지만 많이 흐려요. 365일 안개가 꼈어요." "하지만 책은 정말 좋아해요. 펼칠 때의 느낌, 덮을 때의 느낌이 못 견디게 좋아요. 펼칠 땐 바람이 일고, 가루가 막 흩어지죠. 책마다 다르고 그래서 두근거리고." "문장이란 게 있다면서요? 너무 보고 싶어요. 놀라워요. 글 쓰는 사람들은. 아, 어떻게 하면 문장과 문장을 이어서···" "바람을 일으킬까?"
 - 김한민 『책섬』 24쪽 중에서  
"시가 뭔데요?" 옛날에 한 시인이 말했지. '시는 동물이다.' 아냐. 시는 단어로 된 함정이야. 문장으로 꼬은 올무. (···) 단 한 개의 문장으로도 포획할 수 있고 수십 개의 문단으로도 놓칠 수 있어.
- 김한민 『책섬』 45, 50쪽 중에서  
좋지? 내가 아끼는 섬이야. 책은 오솔길 문장 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걷다 보면, 걸려 넘어지는 문장이 있어. 그 문장 앞에서 넌 작아지지.
 -김한민 『책섬』 81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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