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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꺼움 Dec 28. 2019

[오늘, 책] 깨끗한 존경_이슬아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이슬아 작가의 인터뷰집이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감탄했고, 책 표지를 여러 번 쓸어내렸다.(유독 좋은 책을 읽을 때 하게 되는 습관이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대화에 함께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몰입해서 읽었고, 깊은 울림을 받았다. 그저 텍스트를 읽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닿아 있는 듯했다. 인터뷰어로서의 이슬아 작가의 굉장한 가능성을 실감하는 경험이었다.


  『깨끗한 존경』에는 정혜윤, 김한민, 유진목, 김원영이라는 네 명의 인터뷰이가 나온다. 글을 쓰는 작가라는 공통점을 제외하고는 각자의 분야에서 자신의 방식과 신념에 따라 삶을 살아가는 분들이다. 인터뷰집을 읽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거나 혹은 알고 있었지만 관심이 덜한 작가들이었다. 이슬아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보여준 그들의 생각과 태도를 만난 뒤에는 달라졌다. 이런 분들을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싶을 만큼 마음이 요동친다.   


연민과 이타심이 아닌 깨끗한 존경


  첫 번째 인터뷰이인 정혜윤 PD는 세바시 강연을 통해, 라디오를 통해 얼굴과 목소리를 접했던 작가다. 품고 있는 이야기가 많으신 분이라고 생각했지만, 더 이상 궁금하지는 않았었다. 인터뷰집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깨끗이 존경하는 거예요. 저는 연민으로 잘 못 움직여요. 저를 움직이게 하는 가장 큰 힘은 존경이고 감탄이에요. 그들은 슬프기는 하지만 불쌍한 사람들은 아니에요. 저보다 훨씬 괜찮고 위대한 사람들이에요."(44쪽) 다름 아닌 깨끗한 존경이 자신을 움직이게 한다고 말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써낸 책을 찾아 읽고 싶다. 이 마음이 내 마음이 될 때까지 쫓고 싶어 졌다. 그녀가 과거에 썼던 글, 지금 쓰고 있는 글, 앞으로 써낼 글을 잘 따라가 봐야겠다고 다짐한다.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노력하는 일


  김한민 작가와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나로 인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손쉽게 가질 수 있는 태도인지 알았다. 일회용품을 쓰면서도, 자동차를 끌고 다니면서도, 거리낌 없이 고기를 먹으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나 한 사람이 뭘 한다고 해서 세상은 변하지 않아.' 김한민 작가는 "나도 당신도 완벽하지 않지만 노력해보자. 이렇게 많은 고통이 있는데 우리가 이걸 보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지 않으냐."(85쪽)라고 말했다. 느끼는 바를 실천에 옮기는 것, 아주 조금씩이라도 나란 사람이 달라지는 것을 상상한다. 책장에 꽂혀있던 『아무건, 비건』(위고, 2018)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노력하는 일, 그것을 해보려고 한다.


너무나 읽고 싶은 그녀의 이야기


   유진목 시인과의 인터뷰를 다 읽고, 아니 채 읽기 전에 그녀가 쓴 시집 『식물원』(아침달, 2018)과 산문 『디스옥타비아』(알마, 2017)를 구매했다. 당장 펼쳐 읽고 싶었다. 이 책의 인터뷰에서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유진목 시인과의 인터뷰를 택할 만큼 인상 깊었다. 부산에 가게 된다면 그녀가 운영하는 책방, 손목서가에도 꼭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인터뷰 내내 이슬아 작가가 유진목 시인을 향한 애정과 존경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데, 인터뷰를 매듭지으며 써낸 글이 특히 그랬다. "유진목 선생님이 내 집을 떠난 저녁에 나는 서재를 바로 치우지 않았다. 선생님이 다녀간 흔적을 다음 날 아침까지 두고 싶었다. 살구 씨랑 과도랑 찬물이 담겨 있던 컵이랑 재떨이랑 나무그릇, 그리고 아주 많은 이야기들이 책상 위에 남아있었다. 사랑과 용기도 남았다. 사랑과 용기에 대해 묻지도 않았는데 거기에 분명히 있었다. 자신의 쓸쓸한 곳을 그것들로 채운 사람이 다녀갔기 때문이다."(184쪽)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정상성에 대해 내가 가진 편견을 생각한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물론 비장애인 범주 안에서도 몸과 외모에 대한 수많은 편견이 나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어떤 날은 편견이라는 기둥에 고무줄로 묶여 있는 것 같다. 아무리 멀리 도망쳐도 어느 순간 훅 끌려가게 된다. "지금은 다 버리고 없는 물품이지만 당시엔 다리에 플라스틱 파일 겉표지를 덧대고, 아대 차고, 발목 보호대도 했어요. 거기에 통 큰 긴바지를 입으면 대충 그럴 듯해져요. 십 대 후반부터 이십 대 후반까지 10년 가까이 그렇게 입고 다녔어요."(195쪽) 김원영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전형적인 아름다움이란 뭘까,라고 거듭 되물었다. 동시에 나를 생각했다. 탈코르셋을 지지하지만 동참하지 못하는 나를. 매일 저녁 체중계에 올라가는 나를. 꾸밈 노동을 내려놓지 못하는 나를. 



하나의 입과 두 개의 귀가 있다는 것, 말하고 들을 수 있다는 것, 그리하여 질문하고 대답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인터뷰집을 만들었다.
- 이슬아 『깨끗한 존경』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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