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꺼움 Jan 11. 2020

[오늘, 책] 아무튼, 비건_김한민

"당신도 연결되었나요?"

  작년 여름 사두고 이제야 읽게 되었다. 비건이라는 주제가 결코 가볍지 않은 데다 현실적으로 비건을 실천하기 어렵다는 생각에서였다.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책을 읽지 못했던 이유와 비슷하다. 알면 알수록 변하고 싶어 지니까 변하고 싶으면 현실에서 저항해야 하니까. 저항하는 일은 번거롭고, 힘이 드니까.


  책을 다시 펼치게 된 데는 이슬아 작가의 『깨끗한 존경』(헤엄, 2018)에서 김한민 작가와의 인터뷰의 힘이 컸다. 우리 사회에 가장 광범위하고 근본적으로 퍼져 있는 것은 '세상은 안 변한다'라는 믿음이라는 문장은 한동안 생각에 잠기게 했다. '복잡하고 골치 아픈 사회 문제를 외면하는 태도'는 나에게 늘 봐 오던 모습이었다. 그래, 일단 읽어보자는 생각으로 『아무튼, 비건』을 꺼내 들었다.


  저자는 공들여 비건에 대해 설명한다. 감정적으로 시작한 비건이 오래갈 수 없음을 아는 작가는 '철학, 논리, 정보, 과학'적인 근거를 들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칫 지루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가르치는 선생님의 수업처럼 책장은 술술 넘어갔다. 남, 진실, 결심, 소유, 실전, 반응들, 정보들로 구성된 책을 천천히 짚어보자.


                                                                                                                                                                 

  나의 관심이 타자에게 옮겨가는 일, 그것이 진짜 삶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타자화와 연결감, 비건 등의 용어를 상세히 설명한다. 타자화란 나와 남, 우리와 남을 가르는 행위인데 우리는 동물을 가장 쉽게 타자화한다. '그림책과 상상 속의 동물은 좋아하지만 일상과는 연결'하지 못한다. 작가는 어느 순간부터 '제법 견고하게 타자화'했던 생각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2010년 돼지 생매장(살처분) 사건 이후로 돼지고기를 먹지 않게 된다. "나의 충격은 시각적이지 않았다. 그것은 어느 공무원이 인터넷에 올린 글 한 편에서 비롯됐다. 그는 살처분을 맡은 보건 담당 직원이었다. 하루 종일 돼지를 땅에 파묻고 꿀꿀한 기분으로 당직을 서야 했던 그는, 새벽에 이상한 소리를 듣고 깬다. 나가보니, 낮에 산 채로 묻힌 수천 마리 돼지 중 두세 마리가 밤새 사력을 다해 땅을 파서 거의 지면에 도달하려던 차였다.(21쪽)"


진실


  이 챕터에서는 우리가 알아야 하는 동물성 식품의 진실에 대해 말한다. 잔인함, 오염, 탄소 배출, 훼손, 리스크, 병, 양심마비 이렇게 일곱 가지 타이틀로 각각을 이야기한다. 특히 잔인함을 다룬 부분에서는 죄스러운 마음에 꺼낼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살상 공정 이후에도 의식이 남아 있는 동물이 컨베이어벨트에 매달려 목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일도 허다하다."(27쪽) 진실에 대해 술회한 뒤에는 비건 생활이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에 대해서도 작가 본인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결심

                                                                                                                                                                      

  비건으로 사는 일상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어느 정도의 원칙과 기준을 갖고 있는지부터 비건을 하면서 이루고 싶은 소기의 목적인 '공장식 축산 대폭 축소'의 필요성까지 조목조목 설명한다. 저자는 몸이 아프면서 육류를 줄이기 시작했는데, 의식적으로 육류를 자제하다 보니 식성도 서서히 변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대형마트에서 사온 치킨의 포장을 뜯고 닭다리를 한 입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렇게 역겨울 수가 없었다. 그날부터 다시는 닭고기를 먹지 않았다."(63쪽)

                                                                                                                     

소유


  동물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챕터다. "생명을 가진 데다가 고통을 자각하는 동물을 우리가 이처럼 노예화하거나 상품화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68쪽) 다른 건 차치하더라도 소유의 문제에 대해서는 너무나 당연시해왔기 때문에 읽는 내내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사람들이 '남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전              


  제대로 하지 못할 거면, 흉내만 낼 거라면, 며칠하고 무너질 거라면 의미가 없다는 회의적인 태도를 바꾸게 해 준 챕터다. 물론 작가는 가능하면 비건에 도전하기를 추천하지만 '고정관념에 빠져 시도도 안 하는 일'이 없도록 대안을 제시해준다. 고기 없는 주말, 내 돈 주고 사 먹지는 말기 혹은 몰래 하기, 66퍼센트 비건 등의 방법은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게 했다. 한편, 모피와 가죽을 만드는 과정의 참혹함은 앞으로 소비 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비건을 실천해보면 세상이 얼마나 부조리로 꽉 차 있는지 실감한다. 그러면서 세상 보는 눈이 바뀐다.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무심하고 보수적인 존재일 수 있는지도 새삼 깨닫는다."(100쪽)


반응들


  비건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가장 도움이 될 만한 챕터이다. 비건에 대한 편견이 섞인 반응들에 논리와 근거로 무장한 답변을 풀어놓는다. "동물들도 동물을 먹잖아"라는 반응에 작가는 이렇게 답한다. "동물들은 먹을 만큼만 먹는다. 사자는 재미로 사냥하지 않고, 먹을 것을 창고에 쌓아두지도 않는다. 그 어떤 동물도 인간처럼 다른 동물을 공장 규모로 가두어두고 노예처럼 착취하지 않는다. 생태계 파괴를 일삼으면서 자연의 일부분만 임의로 본떠 악행을 합리화하려는 시도는 스스로의 모순에 갇힐 뿐이다."(109쪽) 이외에도 다양한 반응들에 대한 간결하고, 명확한 답변이 눈길을 끈다.


정보들


  작가가 신뢰하고 있는 비건 관련 정보나 자료를 공개한다. 다큐 프로그램, 건강 정보, 비건 정보, 채식 커뮤니티 등 비건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접하면 좋을 플랫폼을 안내한다. 시간을 내서 다큐들을 보고, 관련 책도 읽어보고 싶었다. 이 챕터를 읽고, 채식 한 끼 앱을 설치했는데 주변 채식 식당부터 채식 관련 다양한 콘텐츠를 접할 수 있어 좋았다. (비건이 아니더라도 채식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유용할 듯하다.)




  『아무튼, 비건』이 비건인들에게 성경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책을 모두 읽고 그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건을 고민하고 있는 독자가 읽는다면 더 이상 어떤 질문이나 의문을 품지 않을 만큼 탄탄하게 잘 쓰인 책이다. 나 역시 세상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절대적인 믿음에서 벗어나 조금씩 시도해보려고 한다. 일단 우유를 끊었고, 주말에는 고기 없이 보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오래 굳어진 식습관을 변화시킨다는 게 쉽지 않음을 매 순간 실감하지만 깨어있는 지금의 상태를 포기하는 것 역시 어려운 일임을 느낀다.


나는 어느 날 무언가를 보았고, 알게 되었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변화를 시도했다. 시도의 결과는 좋았고, 시간이 갈수록 더 좋았고, 그러다 보니 이제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졌다. 이게 다다.
- 김한민 『아무튼 비건』(위고, 2018) 25쪽 중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 책] 헝거_록산 게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