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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꺼움 Jan 16. 2020

[오늘, 책] 삶을 바꾸는 책 읽기_정혜윤

서평은 아마추어의 예술입니다

저는 책을 읽고 한 발짝씩 나가며 거기서 배운 디테일들로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사랑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 정혜윤 『삶을 바꾸는 책 읽기』(민음사, 2012)

  요즘 독서 생활에는 이슬아 작가의 영향력이 크다.( 『깨끗한 존경』(헤엄,2019)에서 나온 인터뷰이들의 책을 찾아 읽는 기쁨이 쏠쏠하다.) 이번 책은 정혜윤 PD의 『삶을 바꾸는 책 읽기』다. 평소 책에 품고 있는 애정과 의지하는 마음이 큰 만큼 책을 말하는 책을 좋아한다. 책의 물성에 대한 이야기, 책에 대한 감상을 엮은 서평집, 책이 중심에 등장하는 소설, 각종 독서 예찬 등등 가리지 않고 무작정 좋아하는 편이다. 이런 내게 정혜윤 PD의 책은 단연 최고라는 타이틀을 붙일 수 있을 만큼 좋았다.


  책을 통과해서 사람 그리고 삶까지 사랑하게 되는 그의 이야기는 따듯했고, 그의 독서의 깊이와 넓이에 거듭 감탄했다. 책에서 얻은 지혜가 삶으로 확장되고, 타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되는 선순환을 배우고 싶었다. 책을 읽는 이유에 어떤 궁극적인 지점이 있다면 정혜윤 PD의 생각들이 그곳에 가깝게 닿아있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목차는 여덟 가지의 질문들로 구성되어 있다.(다독가로 불리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받아볼 법한 질문들이다.) 


  질문으로 시작한 글이 답을 찾아가는 마법 같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누구라도 책, 그 자체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생길 듯하다. 본격적으로 서평을 쓰기 전에 책에서 서평을 이야기한 문장을 옮기며 용기를 내야겠다. "서평은 아마추어의 예술입니다. 서평은 자기 생각을 써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혼란스러워 보여도 진실된 마음이 담겨 있으면 됩니다.(167쪽)"




[첫 번째 질문] 먹고살기도 바쁜데 언제 책을 읽나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의 핵심 키워드는 '나를 키우는 시간'이다. 모든 바쁜 일들을 차치하고, 나 자신을 키우는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인데, 작가에게는 새벽 3시가 그랬다고 했다. '시간이 직선으로 흐르지 않고 둥근 원으로 흐른'다는 표현이 묘하게 마음을 들뜨게 했다. 지난해 본격적으로 서평을 쓰고, 글쓰기 모임을 시작하면서 지샜던 수많은 새벽이 떠올랐다. 물론 잠은 턱없이 부족했지만, 나란 사람이 조금씩 선명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를 키우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배워서 새로 알게 되는 것들이 삶 속에서 내뿜는 에너지는 반드시 존재합니다. 그 에너지들이 시간을 채웁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는데 쓴 시간들은 다시 자기 자신을 만듭니다.(44쪽)"


[두 번째 질문] 책 읽는 능력이 없는데 어떡하나요?


  저자는 경쟁력이란 뜻으로 축소되어 쓰이고 있는 능력이란 개념부터 다시 생각해 보자고 말한다. '자본적 가치도 없고 쓸모도 없지만 자신에게만 있는 고유한 능력'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더욱이 책 읽기는 세상의 불평등함 속에서도 모두가 평등하게 가진 능력임을 강조한다. 한 해 100여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책을 읽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대답의 핵심이다.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곱씹는 일의 가치를 술회한다. "진정한 독해력이란 문자를 정확하게 읽어 내는 능력이 아니라 무엇을 읽건 거기에서 삶을 바라보는 능력입니다.(58쪽)" 


[세 번째 질문] 삶이 불안한데도 책을 읽어야 하나요?


  작가는 책 읽기는 마치 숨 쉬는 시간과 같다고 했다. 더불어 삶 속에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선택을 해야 하는데 제대로 된 선택을 위해서는 책에 의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더 나은 인간이 된다는 것이 심리의 문제가 아닌 윤리의 문제라고 보았는데, 그 시선이 인상 깊었다. 읽은 책의 말을 빌려 자신의 생각과 논리를 뒷받침하는 전개 방식이 좋고, 인용된 책 속의 구절을 읽는 즐거움도 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꺼낸 이야기를 통해 질문의 정답을 찾아가는 작가에게 신뢰가 생겼다. 다음은 책에 담긴 해고 노동자의 말이다. "다른 인간이 되어서 살아 보고 싶어요. 나 먹고사는 것만 신경 쓰고 살면 안 돼요. 우린 그렇게 살면 안 돼요.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어요.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책 좀 읽으면서 세상을 배우고 싶습니다."(74쪽)


[네 번째 질문] 책이 정말 위로가 될까요?


  저자는 말한다. 책은 우리는 자신이 겪었던 혹은 겪고 있는 문제를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게 한다고. 책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자신의 슬픔과 고통을 표현할 방법을 찾고,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돌아보는 일련의 과정에서 위로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즉,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자신이 있는 것이 귀한 일'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 최고의 위로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진정한 위로는 진정한 희망이 그러하듯, 상황을 좋게 보는 데서 생기는 게 아니라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는 데서 생겨나는 것입니다."(101쪽)


[다섯 번째 질문] 책이 쓸모가 있나요?


  작가는 대답을 찾아가며 자기 계발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말한다. 무수히 많은 자기 계발서와 긍정 심리학은 우리의 약한 부분을 파고들며 안심하라고 하지만, 이러한 논리들은 공허하다. 실상 우리는 불완전한 세계에서 지혜를 찾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쓸모 여부로만 본다면 자기 자신도 그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다는 설명이 가슴에 훅 박혔다. 당장의 쓸모만 찾는 것은 디딜 발판을 무너뜨리며 사는 일이라는 해석이 좋았다. "장밋빛 환상을 유포시키는 책이 아니라, 뻔한 상식이나 원한 감정이나 음모론으로 가득한 책이 아니라 고통과 불안을 직시한 책들만이 우리를 구해 줄 수 있습니다."(123쪽)


[여섯 번째 질문] 책의 진짜 쓸모는 뭐죠?


  저자는 책에 대한 사랑과 앎의 깊이만큼 타고난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사람과 얽힌 일화도 마치 바로 눈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듯이 글로 풀어놓는다. 여섯 번째 질문에는 택시 기사 아저씨와의 대화를 시작으로 책의 진짜 쓸모에 관해 답한다. "책은 책과 아직 책으로 쓰인 적 없는 것들(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포함해서)을 연결하게 합니다."(137쪽) 또한 책은 우리를 능력자로 만들어주는데 그 능력은 주변을 생생하게 볼 수 있게 힘이라고 한다. 어떤 것에서든 새로움을 발견할 줄 아는 사람은 진짜 사고를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각각의 책은 각각의 독서를 통해 다시 태어난'다는 보르헤스의 말을 인용한 문장에서 독서 자체의 가치를 깊이 새길 수 있었다. 


[일곱 번째 질문] 읽은 책을 오래 기억하는 법이 있나요?


  작가의 대답을 가장 유심히 읽게 되었던 챕터이다. 굉장히 신선했던 것은 책을 어디까지 읽었는지 표시하지 않고 다시 찾아 읽는다는 답이었다. 그렇게 되면 어디까지 읽은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앞 몇 페이지를 다시 읽게 되는데 이런 방식은 책을 오래 기억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책갈피가 없으면 페이지 끝을 접어두곤 했는데, 이제부터는 과감히 책을 덮고 다시 찾아 읽어봐야겠다. 무엇보다 서평을 쓰는 일에 대한 작가의 해석은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오래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다. "서평을 쓰는 사람들은 자꾸만 고치고 새로 쓰려고 합니다. 그 태도가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자꾸만 다시 잘해 보려고 하는 거 말이에요. 어떻게든 새로."(168쪽)


[여덟 번째 질문] 어떤 책부터 읽으면 좋을까요?


  작가는 살면서 책 리스트를 만들었던 경험을 이야기해주며 자신만의 리스트를 짜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특히, 책 속의 책을 찾아 읽는 방식은 나 역시 선호하는 방법이다.『삶을 바꾸는 책 읽기』 또한 이슬아 작가의 『깨끗한 마음』이 이어준 책이니까. "리스트는 계속 꿈을 꾸게 하고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이런 리스트 덕분에 우린 편견이나 고정관념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엔 진정성이란 말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계속 수정되지 않는 진정성은 언제든 남을 공격할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신이란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린 우리의 확신도 계속 의심하면서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201쪽)





  여기까지 『삶을 바꾸는 책 읽기』에서 던진 질문과 답에 대해 다시 책을 읽는 마음으로 천천히 써 내려갔다. (조금씩 매일매일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며) 책에 담긴 마지막 비밀 질문과 대답은 서평에도 비밀로 남겨둬야지. 며칠 전에는 약속 시간이 남아 찾은 서점에서 정혜윤 PD의  『뜻밖의 좋은 일』(창비, 2018)을 뜻밖에 만나 데려왔다. 이 책에는 어떤 마법 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이제 책장을 펼쳐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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