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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꺼움 Feb 02. 2020

[오늘, 책] 선량한 차별주의자_김지혜


사람과의 인연을 믿듯이, 책과의 인연도 믿는 나는 마음을 나눈 지인이 추천해주는 책은 챙겨 읽는 편이다. 김지혜 작가의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한 통의 편지와 글쓰기를 통해 가까워진 이가 권해준 책이다. 제목에서 오는 이질적인 느낌이 인상 깊었던 터라 기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이동진 독서법』(워즈덤하우스, 2017)에서 소개해준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 중에서 서문이 잘 쓰인 책은 내용도 좋을 수밖에 없다는 조언이 있는데, 이 책의 에필로그를 읽으며 내용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차별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된 계기와 그 과정, 책의 전개에 방식에 대한 세심한 설명이 특히 좋았다. 


저자는 대학의 다문화학과에서 소수자, 인권, 차별에 관해 가르치고 연구하는 학자다. 오랜 시간을 들여 연구하고, 가르친 분야에 관한 책인 만큼 논리의 깊이와 전개가 체계적이고, 설득력 있다. 차별에 대한 책을 펴내면서도 '여전히 차별을 잘 안다고 말할 수 없다.'라고 밝히는 저자의 태도에서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 1부에서는 우리가 차별을 알아채지 못함으로써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는 현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고, 2부에서는 차별이 정당하게 위장되는 원인과 우리 주변에 있는 불합리한 차별 사례들을 살펴본다. 3부에서는 차별에 저항하는 사람들과 그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다룬다. 끝으로 4부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된 논란을 중심으로 해당 법의 상징성에 대해 피력한다.  




1부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탄생


여러 가지로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부당함을 인식하면서도 남성의 입장에서 역차별을 주장하면 나도 모르게 그 의견에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반박 논리를 찾지 못했던 내게 '다수자 차별론'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해 준 챕터이다. 각자가 서 있는 '기울어진 세상에서 익숙한 생각'으로 인해 차별을 인식하지 못하고, 역차별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현상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장애인이 버스를 타면 시간이 더 걸리니까 돈을 더 많이 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이 학생은 기울어진 세계 위에 서서 공정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설계된 질서 속에서 바라보면 버스의 계단을 오르지 못하는 것은 장애인의 결함이고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는 행위다. 그러니 장애인이 비장애인보다 돈을 더 많이 내는 것이 공정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는 애초에 비장애인에게 유리한 속도와 효율성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기울어진 공정성임을 인식하지 못했다.(37쪽)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창비, 2019)




2부 차별은 어떻게 지워지는가


유머의 탈을 쓴 비하성 발언을 마주쳤을 때 가져야 하는 태도에 대해 곱씹었다. 누군가를 비하하고, 조롱하는 농담에 싸늘하게 반응하는 용기를 내고 싶었다. 마음 안에는 부당하다고 인식하면서도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고 웃는 것으로 동참했던 몇몇 순간들을 떠올리자 불편했고, 부끄러웠다. 그뿐만 아니라 비정규직을 조금 다르게 대우하는 것은 차별이 아니라는 관념 역시 능력주의 사회 안에서 나도 모르게 만들어진 차별적인 태도임을 깨달았다. 나 스스로가 선량한 차별주의자였음을 확인하게 해 준 챕터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불굴의 의지로 온갖 관문을 뚫고' 정규직이 된 사람과, '훨씬 적은 노력으로 쉽게' 비정규직이 된 사람을 어떻게 똑같이 대우할 수 있겠는가? 두 사람이 똑같은 일을 하고 있어도 똑같은 대우를 받는 것은 공정하지 않게 보인다.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나, 실제로 능력에 차이가 없다는 사실과 같은 현재 상태가 아니다. 능력주의라는 거대한 신념 체계를 지키기 위해 가치가 다른 두 사람 사이에 어떻게든 차별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106쪽) -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창비, 2019)




3부 차별에 대응하는 우리들의 자세


얼핏 보면 형식적 평등의 개념이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그보다는 다양성이 고려되는 실질적 평등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했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억압에 기여했다면, 그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문장에 묵직한 책임감을 느꼈다. 끝으로 저자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의미하는 상징성에 대해 강조한다. '나에게 유리한 차별은 괜찮고 나에게 불리한 차별은 안 된다'라는 것은 지극히 모순적이지만, 누구도 이런 인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법 제정이라는 선언적인 조치가 필요함을 실감했다. 


내가 모르고 한 차별에 대해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몰랐다" "네가 예민하다"는 방어보다는, 더 잘 알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는데 미처 생각지 못했다는 성찰의 계기로 삼자고 제안한다.(189쪽) -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창비, 2019)




처음에는 '차별'이 나와는 동떨어진 문제라고 생각했다. 나는 차별을 드러내지 않으니까, 차별을 '하는' 주체는 아니라고 내심 믿었던 것 같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고 난 뒤에는 세상을 보고, 나를 이해하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다. 차별은 복잡다단한 형태로 주변 곳곳에 자리 잡고 있고, 나는 차별을 당하는 동시에 차별을 하는 사람이다. 물론 저자가 여전히 차별을 잘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나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겠다, 라는 다짐은 못하겠다. 다만, 다수가 아닌 소수의 입장에서 한 번 더 고민하려고 애쓸 것이다. 이 책과 인연이 닿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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