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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꺼움 Feb 09. 2020

[오늘, 책] 왕자와 드레스메이커_젠 왕

무슨 차이가 있어요?

무슨 차이가 있어요?


  너무 좋아서 쓰고 싶은 문장이 넘치는 책이 있는 반면 너무 좋아서 말문이 막히듯 글문이 막히는 책이 있다. 그건 아마도 더 근사하게 소개하고 싶은 욕심 탓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럴 때일수록 힘을 빼는 것이 중요하다. 잘 소개하고 싶은 부담을 내려놓고 이 책, 왕자와 드레스메이커에 대한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독서 팟캐스트 #책읽아웃 어떤 책임이라는 책을 소개하는 코너에서 캘리님이 추천한 올해의 책이다. 추천받아서 읽어본 책에 실패가 없었던 만큼 독서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팟캐스트인데. '올해의 책'이란 주제를 갖고 소개하는 책이라니,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설과 만화의 중간 형식을 취한다는 그래픽 노블이라는 장르는 처음이었다.


  택배 상자를 열고 만난 책의 실물은 훨씬 좋았다. 양장으로 잘 만들어진 표지와 선명한 그림, 무엇보다 아름다운 드레스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마음먹고 읽는다면 반나절이면 충분히 읽을 거라는 알았지만, 어쩐지 후루룩 읽고 싶지 않았다. 12장으로 구성된 만화를 하루에 1장씩 아이들과 함께 읽었다. 그렇게 천천히 조금씩.




  이 책을 읽는 열흘 남짓의 시간 동안 우리는 모두 책에 사로잡혔다. 함께 책을 읽는 시간을 나도, 아이들도 손꼽아 기다렸다. 가끔은 오늘 몇 번째 장을 읽을 차례인지 일곱 살 아들이 더 잘 기억했다. "빨리 잘 준비하고, 왕자와 드레스메이커 읽자!"라고 말하면 평소와 달리 양치와 세수도 서둘러하는 모습이 참 귀여웠다. 겨울밤, 포근한 이불속에서  디자이너 프랜시스와 세바스찬 왕자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드레스를 사랑하고 입기를 즐기는 세바스찬, 그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가 입는 드레스를 만드는 디자이너 프랜시스, 전체적인 플롯이 정말 좋았다.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심어줬을 편견을 책을 통해서라도 조금 유연하게 해 줄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에 더욱 그랬다. 신기했던 점은 아이들도 프랜시스처럼 드레스를 입는 세바스찬 왕자를 편안하게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엄마가 따로 말해주지 않아도 아이는 세바스찬을 이해했고, 이야기의 힘이란 게 이런 것이구나, 실감했다.


"그 빌어먹을 사장님 밑에서 일하던 걸 그만두고 왕자님의 드레스를 만들기 위해 여기 왔어요. 제가 왜 다시 돌아가겠어요?"

"이상하지도 않아?"

"무슨 차이가 있어요? 이건 제가 꿈꾸던 일인 걸요. 우리는 서로 도울 수 있어요."

"네가 내 비밀을 지켜 주고 내게 아름다운 옷을 만들어 준다면···"

"···저는 언젠가 위대한 디자이너가 될 수 있겠죠."   


- 젠 왕 『왕자와 드레스메이커』(비룡소, 2019)                                                                




  일상에서 언제든 마주칠 수 있는 다른 형태의 삶에 대해서 프랜시스처럼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프랜시스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말한다. "무슨 차이가 있어요?" 다름을 배척하지 않는 태도를 갖춘 엄마가 되고 싶다. 물론 나는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나를 이루고 있는 여러 편견들과 계속 싸워나가야지. 그런 과정을 통해 조금씩 변하고, 아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기를. 이 책이 의미 있는 역할을 해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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