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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꺼움 Feb 22. 2020

[오늘, 책] 최선의 삶_임솔아

한 권의 소설을 통과한다는 것

이 소설을 읽으며 처음엔 실체 없는 폭력을 다룬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하니 폭력을 만든 실체가 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았고 만연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임솔아『최선의 삶』 박성원(소설가) 심사평 중에서



   소설을 읽을 때, 분명 허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작가의 경험이 아닐까 궁금해지는 지점들이 있다. 임솔아 작가의 『최선의 삶』이란 소설을 그랬다. 가방에 읽을 책이 없어서 불안해진 어느 날, 서점에서 직관적으로 고른 책이다. 물론 작가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여러 매체를 통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의 책은 접한 건 처음이었다. 대전이라는 지명이 나오고 전민동과 읍내동을 설명한 문장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소설이 허구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말았다(대전에서 나고 자라서 지금껏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지근거리에서 일어난 이야기처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읽었다. 때문에 책을 단순히 재미있다고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마치 내가 겪어낸 듯한 방황과 불행을 그저 재미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읍내동에 살면서 전민동으로 위장 전입해 전민중학교에 다니가 된 강이, 전민동은 연구 단지가 밀집한 동네로 명문고 진학률이 높은 학교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 소영, 아람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까워지면서 강이의 학창 시절은 굴곡을 겪게 된다. 술, 담배, 가출. 흔히 일진이라고 불릴 법한 아이들의 나날을 소설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제3자의 시선이라면 그들을 못 미더워하고, 한심해할 수 있겠지만, 그 아이들의 행동을 껴안고, 받아들였을 때는 다르다. 나는 탈선을 비난하는 어른이 아니라 온전히 강이가 되어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 속에는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어쩌지 못하는 힘의 논리와 결코 아름답지 않은 어른들의 세계가 있다. 허우적거리지 않고 버틸 재간이 없는 세계이다.   


아이들은 한쪽 끝에 앉아 있는 나를 일제히 바라보았다. 입과 머리에서 자꾸 피가 흘러내렸다. 오른손 검지 손톱이 빠져 있었다. 바람이 불었고, 한기가 느껴졌다. 이가 덜덜 떨려왔다. 씀바귀 씨앗이 반짝였다.
- 임솔아『최선의 삶』(문학동네, 2015) 116쪽 중에서




   한 권의 소설을 통과해가면서 겪어내는 경험은 타인에 대해 어떤 평가나 잣대를 하게 되는 순간에 멈칫하게 하는 힘이 있다. 어느새 나는 무조건적인 비난과 멸시를 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 『최선의 삶』에서 강이와 함께 길을 헤매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다만, 이 책의 어두운 분위기에 짓눌려 고통을 느끼기 두려운 사람에게는 "이거, 정말 볼만해."라며 권하고 싶지는 않은 책이다. 어느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가출해서 거리를 헤매는 아이들의 마음을 짐작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건네주고 싶은 책이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어느새 강이의 최선을, 그리고 임솔아 작가의 최선을 응원하고 싶어진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소영도 그랬다. 아람도 그랬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떠나거나 버려지거나 망가뜨리거나 망가지거나. 더 나아지기 위해서 우리는 기꺼이 더 나빠졌다. 이게 우리의 최선이었다.
- 임솔아『최선의 삶』(문학동네, 2015) 174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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