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덟 살이던 1991년 여름 초입이었다. 딸을 목욕시키던 엄마는 아이의 성기에 상처를 발견한다. 염증이 되어 피가 묻어 나오고 있었다. 엄마는 어린 딸에게는 제대로 된 이유를 묻지 못했고, 섣부른 추측만으로 경찰에 신고할 수조차 없었다. 우선 치료를 위해 산부인과를 데리고 갔지만, 난처한 일에 연루되지 않을까 몸을 사리는 몇몇 의사들에게 진료조차 거부당했다.
다행히도 같은 아파트에 사시던 의사 선생님께 진료를 받을 수 있었고, 선생님은 엄마의 막연한 불안감에 실체를 부여했다. 누군가 장난을 친 게 분명하다고, 나쁜 어른의 손을 탄 거라고. 그때부터 엄마의 속앓이가 시작됐다. 어떤 사람인지 추측할 수 있었으나, 확신할 수 없었던 엄마는 혹시나 딸이 더 큰 피해를 당할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그저 소리 없이 우는 일 밖에는.) 세월은 무심히 흘렀고, 딸의 몸에 남았던 상처가 엄마의 마음에 상처가 되어 치유되지 않은 채 가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았다. 스물일곱, 나는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그제야 엄마는 깊이 묻어둔 아픈 기억을 꺼내 보였다.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여덟 살 즈음은 이랬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엄마가 상상하셨을 방식의 성추행을 당하지는 않았다. 다만 나이가 꽤 많았던 담임선생님이 엉덩이를 만지며, 어깨를 주물러달라고 했던 몇몇 잔상들이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을 뿐이다. 상처 입을 정도의 피해를 겪었다면 더욱 쓰라린 트라우마가 되었을 테지. 엄마께 말했다. 그런 일은 없었다고 이제 내려놓아도 된다고. 죄책감과 슬픔에 내내 아팠을 엄마의 오랜 세월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한편으로는 눈에 보이는 피해가 없었다고 해서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 우습기도 하다. 귀여워서 어린 여자아이의 엉덩이를 만지는 것은 과연 올바른 걸까? 성추행 피해가 의심되는 아이의 진료를 거부하는 병원은 정상일까? 1990년 초반, 엄마들끼리도 딸에게 딱 붙는 쫄바지를 입히거나, 짧은 치마를 입히면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저 알아서 조심을 시켜야 한다고 했던 무지한 시절.
그렇다면 오늘날 사회는 얼마큼 달라졌나. 지난 일요일 엄마와 함께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1980년대부터 현시대까지 고스란히 겪어낸 엄마와 나는 영화를 보며 연신 울었다. 나는 변화된 많은 것과 여전히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들에게 대해 생각했다. 여성의 성 상품화부터 가정·직장 내 다양한 차별까지. 남녀 간의 대립구도가 돼서는 해결되지 않을 문제들이다.
내 딸, 내 아들이 합리적이고 평등한 세상에서 살게 하려면 각자의 목소리를 높이기보다는 이해와 협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아홉 살 딸과 여섯 살 아들. 이렇게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여자는 얌전하게 행동해야 해.” , “남자는 울면 못 써.” 같은 말들을 무심코 내뱉지 않으려고 애쓴다. 요즘 누가 그렇게 말하냐고 묻는다면, ‘남아선호사상’이란 단어가 생소하지 않게 들리는 시대를 살아온 사람에게는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고 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