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환기하는 멜로디

playlist, 이루마 피아노 연주곡

by 기꺼움

나는 공간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다. 결혼 전에는 작은 베란다를 끼고 있는 내 방에서 하루 온종일 책을 읽고, 노래를 들으며 에너지를 충전했다. CD 플레이어가 두 바퀴, 세 바퀴 돌 때까지 침대에서 여유롭게 뒹굴뒹굴했다. 밤이면 베란다에 나가 창밖을 오래 바라보거나, 귀가 따끈해질 때까지 긴 통화를 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나만의 안전한 공간이 주는 위로를 굉장히 사랑했던 거 같다. 내 방을 떠올리면 애틋하고, 그리워지니까.




결혼한 뒤로는 내 방이라는 개념이 사라졌다. 두 아이가 태어났고, 더 이상 나만의 공간은 꿈꿀 수 없었다. 안방에는 커다란 패밀리 침대가 들어가 있고, 나머지 두 개의 방에는 그림책과 장난감으로 가득하다. 분리된 공간을 가질 수 없는 아쉬움을 대신할 뭔가가 필요했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내가 책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임을 밝혀야 한다. 얕은 독서와 즐거운 독서를 지향하며, 책을 사는 일에서만큼은 누구보다 사치스럽다. 한국 소설을 좋아하고, 시를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건 책이 만들어낸 공간에서 풍기는 기운이다. 특유의 향기를 맡으며 불안을 잠재운다.


집에는 많은 책들이 있다. 종일 해가 드는 거실 한쪽 벽면은 조립식으로 책장을 짰다. 부엌에는 정사각형 전면 책장이 놓여있다.(책등만 바라보기 아쉬운 책들은 전면 책장에 꽂아 둔다.) 안방에 앉은뱅이책상 위에는 작은 나무 책꽂이가 있다.


무엇보다 마음이 가는 공간은 안방과 작은방 사이에 놓인 6단 책장 앞이다. 올해 생일 선물로 받은 책장인데 가장 아끼는 책들이 꽂혀있고, 교보문고 시그니처 향 디퓨져를 올려두었다. 쓱 스치고 지나갈 때면 서점의 향이 난다. 그 순간 얼마나 편안하고, 행복한지는 내가 아니면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이렇게 집안 여기저기 나를 위한 책으로 채워가며, 공간에 한 애정도 서서히 깊어졌다.




살면서 맥없이 기운이 빠지는 날이 종종 있다. 쉬고 싶은데 쉴 수 없는 주말에는 더욱 그렇다. 아이들 아침을 챙겨줘야 하니 늦잠은커녕, 평일 내내 엄마가 아쉬웠던 녀석들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다 보면 내 감정에도 미세한 먼지들이 켜켜이 쌓인다.


마음에도 환기가 필요하다. 그럴 땐 블루투스 스피커를 켠다. 이루마의 피아노 협주곡이 흘러나오면 마음에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음악이 주는 치유의 효과를 생활에서 감각하며 내 안에 먼지를 쓸어낸다. 언젠가 다시 독립된 공간을 갖게 되기를 꿈꾸며.




https://www.youtube.com/watch?v=BDNOX5kxqFk&list=PLa8akc3Kuq30Nqylqpzr5D0KIO4Ee4qR5&index=2&t=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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