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보를 닫고, 에너지를 채우는 일

playlist, 아름다운 시절_최백호

by 기꺼움

지난 주말, 오랜만에 엄마의 역할을 내려놓고 온전히 나만의 하루를 보냈다. ‘주말에는 마음의 보를 닫고 에너지를 채우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사려 깊은 조언을 들은 후였다. 마침 신랑이 아이들을 데리고 시댁에 다녀오겠다고 서둘러줘서 훨씬 가벼운 기분이 되었다.




점심에는 천안아산역에서 오랜 친구 두 명을 만났다. 대전에서 나고 자랐지만, 친한 친구들은 대전을 벗어나 자리를 잡고, 가정을 이뤄서 얼굴을 자주 보기 어렵다. 오랜만에 만난 내 친구들은 여전히 예뻤다. 고등학교 시절 그 모습 그대로였다(사람들은 우리를 의심의 여지없이 30대로 볼 테지만).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일찍 결혼해서 두 아들 모두 초등학교에 다니는 친구는 뱅쇼와 밀크티를 만들어서 팔고, 올해 초 사랑스러운 딸의 엄마가 된 친구는 그사이 복직해서 인사 업무를 맡고 있다고 했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는 시간을 보내며 익숙하고 편안한 사람들에게 얻을 수 있는 정다운 에너지로 채웠다.


기차를 타고 오면서 KTX 매거진을 읽었다. 나는 KTX를 타서 매거진을 읽는 일을 참 좋아한다. 이번 호에는 경북 봉하 마을 주변에 고즈넉한 고택들을 소개한 기사가 특히 좋았다. 고요함과 여유가 그로 전해져서 머리가 말개졌다. 기차 안에서 만나는 활자와 사진은 여행지에 당도한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그렇게 기차 안에서, 여행을 통해 얻는 활력의 에너지를 채웠다.


다시, 대전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다섯 시. 한 시간 후면 지역 독립서점 삼요소(오래오래 지키고 싶은 문화 공간이다)에서 장강명 소설가의 강의가 시작될 터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장강명 작가는 『표백』,『댓글부대』 등 사회적 이슈를 현실감 있게 표현한 소설을 발표했고, 연달아 문학상을 휩쓸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는 작가다. 나는 그의 소설 중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란 책을 사랑한다. 책이든 사람이든 너무 좋으면 그걸 표현할 수 있는 말도, 글도 없어 아쉬워질 때가 있는데, 이 소설이 내게는 그렇다. 플롯부터 인물, 배경까지 완벽하게 다가온 소설이다(이 글의 플레이리스트인 최백호의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노래도 소설 속에 등장한다). 이토록 슬프고, 다정한 소설을 쓰신 분을 만나게 된다니. 세상은 연결되어 있고, 가끔은 원하는 일이 마법처럼 이뤄지곤 한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옷깃을 여미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서점에 도착해 적당한 자리를 잡고, 장강명 작가님의 신작을 읽으며 기다렸다. 마음이 들떠 활자가 눈앞에서 겉돌았다. 작은 무대 위에 오른 작가님은 선한 눈매와 예의 바른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듣고 말하는 사람들과 읽고 쓰는 사람들의 차이에 한 작가님의 견해가 마음에 와 닿았다. 반응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읽고, 쓰는 공동체가 소중하다고 하셨다. 소소하게 읽고, 쓰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내가 기특하게 여겨졌다. 작가님은 모두가 책을 한 권씩 써야 한다고 하셨는데, 지금 각자가 서 있는 중심에서 문제가 무엇인지 바라보고, 쓸 수 있어야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버스 기사로 일하는 허혁 작가님이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를 쓰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분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을 라고 덧붙이셨다.


나는 어떤 글을 써야 할까? 아직 답을 찾지 못했지만 질문을 던진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강의가 끝나고 작가님의 사인을 받으며 마음속에 울렁이는 수많은 말들을 삼키고 그저 “오래오래 써주세요.”라고 용한 인사만 건넸다. 오래오래 지키고 싶은 공간에서, 오래오래 글을 써주셨으면 하는 작가님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에는 일상을 살아낼 에너지가 넘실거렸다.




팽팽하던 내 삶이 조금 느슨해진 하루였다. 불현듯 엄마가 보고 싶어 졌는데, 우리 엄마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시는지 한참을 생각해야 해서 속상했다.(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고민 없이 떠오르는데.) 바닐라 아이스크림, 고로케, 호박엿을 사서 엄마 집으로 갔다. 하루 끝에 엄마라니. 결혼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카카오톡 대화창을 열고 남편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하트를 보냈다. 하트에는 여유로운 주말을 자주 보내고 싶은 마음을 감춰두었는데, 과연 남편은 숨겨둔 메시지를 발견했을까?




https://www.youtube.com/watch?v=ZUssF3eEuAA&list=PLa8akc3Kuq31YfimZJllwyU6tQQp5A3ZA&index=2&t=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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