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바람이 불고, 살짝 물을 주는

시가 주는 반짝거리는 무언가를 알려주고 싶은데

by 기꺼움

서율아, 안녕.


햇살은 뜨겁지만 선명한 하늘과 드물게 불어오는 바람 덕분에 견딜만한 아침이야. 오늘은 서율이와 시의 첫 만남을 이야기해 줄게. 네가 막 다섯 살이 되었을 무렵이었어. 어느 날 서율이가 혼자 노래를 만들어 흥얼거리는데 작은 입에서 나오는 노랫말이 너무 예쁜 거야. 엄마는 부랴부랴 연필을 가져와 서율이의 노래를 스케치북에 옮겨 적었지.




활 짝


내 마음속에 꽃나무가 서있죠

나무도 활짝 나비도 활짝

모두들 활짝 웃어봐


잊지 않은 내 마음

하늘도 바다도 헤엄치는 바닷속

정말 예쁘죠


나비처럼 꽃처럼 활짝

나비도 예쁘게 활짝 활짝

자꾸자꾸 예쁜 내 마음




그때부터 서율이의 노래는 시가 되었고, 한글을 깨치고 부터는 직접 동시를 쓰기 시작했어. 그렇게 스무 편 정도의 시가 모였지. 요즘은 관심이 옮겨갔는지 뜸하지만, 서율이 마음 안에는 보석 같은 시어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엄마는 알아. 언젠가 가만가만 나와서 너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따스한 위안을 줄거라고 생각해.


서율아, 시란 뭘까? 시가 주는 반짝거리는 뭔가를 알려주고 싶은데, 엄마의 문장으로는 도저히 설명을 못하겠어. 엄마가 좋아하는 권여선 작가님의 말씀을 빌려 볼게.


문학의 언어, 특히 시는 그것을 읽는 독자를 구원하지는 않지만 살아있음에 대해 살짝 바람이 불어주고, 살짝 물을 주는 것과 같은 소곤소곤함을 누릴 수 있게 해 준다고 생각해요.


맞아. 시는 정말 그래. 엄마가 작가님의 표현을 몇 번을 쓰고 되뇌었는지 몰라. 답답한 일상에 살짝 바람이 불고, 살짝 물을 주면 한결 편안해지거든. 서율이가 문학의 언어가 주는 신비로움을 느끼고 살아가면 좋겠어. 문학은 우리 서율이의 삶에 '소곤소곤함'을 누리게 해 줄 테니까.


2019년 뜨거운 여름을 통과하며 아이들에게 매일 쓴 편지를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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