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의 함정

playlist, 누군가에게_김사월

by 기꺼움


며칠 전 ‘책, 이게 뭐라고’라는 팟캐스트를 들었다. 진행자인 요조가 쓴 『아무튼, 떡볶이』라는 책을 소개하는 에피소드다. 기다렸던 책이어서 반가운 마음에 팟캐스트를 듣고 있는데 오가는 대화 중에 멈칫해지는 지점이 있었다. 일시정지를 누르고, 앞부분으로 돌아가 다시 들었다. 에세이를 쓰면서 빠질 수 있는 함정에 관한 이야기다. 찬물 세수로 정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팟캐스트의 대화를 정리해보면 이렇다. 독자가 에세이를 읽고, 작가를 공격한다면 그 기본 정서는 작가의 윤리적 가치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도덕적 우월감을 과시하는 것에 한 반감이다. ‘너희는 고민하지 않는 세상의 폭력과 고통을 이야기하는 거야.’라는 식의 잘난 척으로 받아들여진다. 즉, 교훈을 두 방울을 넣어야 하는데 세 방울을 넣는 순간 ‘어랏’하게 되는 지점이 생긴다는 이야기다. 팟캐스트의 또 다른 진행자인 장강명 작가는 『아무튼, 떡볶이』에는 이런 부분이 전혀 없어서 좋다고 말했다.


이에 요조는 에세이는 위험한 장르라고 답했다. 겉으로는 자기혐오를 하고 있는데, 내심으로는 이런 나에게서 괜찮음을 발견해 줘, 라는 욕망을 드러내기 쉽기 때문에 늘 경계한다고 덧붙였다(이는 작가의 탓이 아니라 누구든지 조금만 방심하면 빠질 수 있는 함정이라고). 내내 경계하며 글을 썼기 때문일까?『아무튼, 떡볶이』속의 문장들은 솔직하면서도 균형 잡혀 있다.

“ 요조 씨는 어떤 떡볶이를 좋아하세요? ” 여러 번 질문을 받았다. 그럼 나는 대답했다. “다 좋아해요! ” (중략) 다 좋아한다는 말의 평화로움은 지루하다. 다 좋아한다는 말은 그 빈틈없는 선의에도 불구하고 듣는 사람을 자주 짜증나게 한다. 또한 다 좋아한다는 말은 하나하나 대조하고 비교해가며 기어이 베스트를 가려내는 일이 사실은 귀찮다는 속내가 은은하게 드러나는 제법 게으른 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오만 없는 좋아함에 그닥 불만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다 좋아한다’라는 말에 진심으로 임하지 않았다면 이 책도 이렇게 묶이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요조『아무튼, 떡볶이』144~145쪽 중에서




작가가 가진 견해를 더도 덜도 없이 알맞게 풀어내고, 독자 또한 자연스럽게 자신의 태도를 곱씹게 만드는 문장이다. 나는 잘 쓰고 있는 걸까? 혼자가 아니라 함께 글을 쓰면서 머뭇거림이 늘었다. 생각을 너무 과장하거나, 보태지 않았는지. 문장을 몇 번씩 살펴본다. 그럼에도 욕망이 섞인 문장은 지뢰처럼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것은 써둔 글을 다시 읽을 때마다 오타가 나오고, 비문이 보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담담한 문체로 깊은 울림을 주는 글을 쓰고 싶다. 적당한 온도로 마음에 닿아 조용히 웃거나, 울게 되는 글이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나는 쓴다. 김연아 선수가 트리플 악셀 점프에 성공하기 위해 수백 번을 넘어진 것처럼(내 글쓰기와 비교가 어렵다는 것은 잘 알고 있으나, 이상하게 김연아 선수가 떠오른다). 그렇게 시도하고, 넘어지기를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정말 언젠가는 내공이 있는 문장으로 채운 글을 써낼 수 있겠지.




글쓰기를 조금 더 일찍 시작했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상상한다. 그러다 금세 도리질한다. 서른 중반의 나는 탄생과 죽음을 마주했고, 약간의 성공과 꽤 많은 실패를 경험했다. 그 시간을 통과하며 조금 철이 들었다. 오늘 내딛는 한 걸음의 가치를 어렴풋이 안다. 글쓰기를 시작하기에 딱 맞는 나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11mxnvHowTY&list=PLa8akc3Kuq31pGvz9zWToAefFHPEiCPM8&index=2&t=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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