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름지기 글이라면,

기꺼운 독서일기 여덟

by 기꺼움


# 1


모름지기 글이라면 쉽게 잘 읽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막힘없는 문장을 써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면서, 잘 읽히는 문장으로 쓰인 책을 만나면 감탄했다. 눈으로 읽어내는 동시에 의미가 새겨지는 감각이 좋았다. 그럴 때면 스케이트를 신고 얼음 위를 활보하는 자유로움에 더해 상쾌한 바람까지 느낄 수 있었다.



# 2


평론집을 읽기 시작하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는 중이다. 물론 잘 읽히는 책과 문장을 예찬하는 마음은 여전하지만,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듯 어려운 문장을 읽는 기쁨 역시 작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페이지는 쉽게 넘어가지 않고, 독서에 쓰는 에너지가 상당하지만 복잡하고, 깊이 있는 문장들을 읽어냈을 때 오는 어떤 희열이 있다.



# 3


분명 한국어인데 외국어를 읽는 듯한 생소한 느낌, 평론가의 생각에 닿은 듯싶다가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문장에 허탈해지기 일쑤지만,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형체가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굉장히 반갑다. 책을 읽는 시간보다 머릿속으로 문장을 굴리는 시간이 늘면서, 스스로를 단련하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 4


신형철 평론가를 통해 평론의 세계에 발을 디딘 뒤, 황현산, 도정일 등 문학평론가들의 다양한 책을 짬짬이 보고 있다.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엮인 문장을 읽어 내면 달콤한 사탕을 손에 쥔 아이처럼 뿌듯해진다. 다만, 아직 완독한 평론집은 없으며, 완독한다고 하더라도 감히 서평을 쓸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음···그것은 마치 훌륭한 시집을 앞에 두고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기분과 비슷할 것 같다.



시는 순진하면서도 순진하지 않아서, 자유와 평등을 완전하게 누리고 생명이 모욕받지 않는 풍요로운 세계가 실현된다고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그 풍요로운 세계가 존재할 수 없다고도 믿지 않는다. 불행의 끝까지 가게 하는, 어떤 불행의 말이라도 그 말을 시 되게 하는, 고양된 감정을 그 세계가 아니라면 어디서 얻어올 것인가. 시는 현실에 내재하는 현실 아닌 것의 알레고리다.(98쪽)
- 황현산 『잘 표현된 불행』(난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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