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글이 되면 신비로워,

기꺼운 독서일기 아홉

by 기꺼움

# 1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밥하고 아이 둘을 챙기다 보면 하루가 길지 않다. 가방 무겁게 책을 넣고 다니지만, 정작 읽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운전을 하다 신호가 멈추면 펼쳐 읽기도 하고, 점심을 서둘러 먹고 읽기도 한다. 그나마 에세이를 읽을 때는 덜 아쉽다.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 소설은 책장을 덮는 게 쉽지 않다. 자리를 박차고 도서관으로 가서 종일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을 가만히 누른다.



# 2



아쉬움을 달랠 방법을 찾았다. 책을 읽지 못할 때는 사람책을 읽는다. 바로 앞에, 옆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에 조용히 귀 기울인다. 명태조림을 먹으며 휴가를 앞두고 들뜬 동료의 이야기를 듣고, 모카 라테를 마시며 패션의 완성은 무엇일까, 대화한다. 여행책, 잡지, 가끔은 소설을 사람책을 통해 듣는다. 해가 지고 나서야 만난 아이들의 이야기는 흥미로운 그림책이 된다. 종알종알 목소리가 반갑다.



# 3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오롯이 집중하다 보면, 책을 읽을 때 느끼는 충만감을 경험할 수 있다.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인터뷰하고 멋진 글을 써내는 작가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은 기분이 된다. 말이 글이 되면 신비로워진다. 그래서 나는 말을 글처럼 듣는다. 그런 하루를 보내고 자정 무렵이 되면 드디어 편안하게 책을 펼친다. 쏟아지는 잠을 조금만 참아내면 활자와 제대로 만나는 순간이 온다.



# 4



오늘은 은유 작가의 인터뷰집 『출판하는 마음』(제철소, 2018)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만드는 편집자들, 그들이 꺼내 논 이야기가 듣고 싶다. 은유 작가는 그 말들을 어떻게 글로 풀어냈을지 너무 궁금하다. 활자가 된 사람책이 지금 내 손에 들려 있다. 서문을 읽으며 마음이 달뜬다.



글의 총합이 책이 아니라는 것. 좋은 글이 많다고 좋은 책은 아니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 한 권의 책은 유기적인 구조를 갖고 있으며 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와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 그 일을 과단성 있게 솜씨 좋게 해내는 사람이 편집자라는 것. 저자는 외부자의 시선을 갖기 어렵기에 편집자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 좋은 출판사보다 좋은 편집자를 만나는 게 중요하다는 것.
- 은유 인터뷰집 『출판하는 마음』(제철소,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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