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행의 프롤로그

playlist, 널 사랑해_원 모어 찬스

by 기꺼움


곧 있으면 4박 5일의 제주 여행을 떠난다. 지난여름 비행기 표를 예매하고, 까마득히 멀게 느껴지던 11월이 왔다. 두 달 전부터 아이들과 여행을 떠나는 날짜를 헤아렸는데, 디데이가 열흘 안쪽으로 좁혀지면서 우리는 춤추기 시작했다. 카운트다운의 긴장감은 역시 10이란 숫자부터 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면역력이 약한 나는 어려서부터 잔병치레를 많이 했다. 약을 꽤 많이 먹어서인지 어른이 된 후에는 아파도 약을 먹지 않고 버티게 된다. 약간의 콧물과 드문드문 기침을 하던 차였고 늘 그렇듯 병원에 가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 부쩍 감기가 악화되었다. 목이 부어서 침을 삼키는 것도, 말을 하는 것도 어려웠다. 이럴 때면 내 몸은 꼭 알람시계 같다. 분명 여행이 다가오는 걸 감지하고 있으리라. 마음은 이렇게 설레고, 들뜨는데, 어째서 몸은 따라가지 못하는지 매번 속이 상한다.


어제 퇴근 후에는 서둘러 동네 의원에 갔다. 짐작으로는 약이 독해서 금방 낫는 병원이다. 내가 병원에 간다는 건, 감기를 물리치고 떠나겠다는 굳은 의지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아이들과 떠나는 여행인 만큼 체력이 중요하다. 집에 와서는 꼭 해야 할 일들만 챙기고 일찍 침대에 누웠다. 역시 약은 독했다. 정신은 몽롱하고, 몸은 노곤해진다. 내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일들도 나 없이 잘 돌아간다는 것을 아플 때마다 깨닫는다. 아빠랑 놀던 아이들은 하나, 둘 내 옆으로 와서 잠든다.




오랜만에 꿈꾸지 않고 깊은 잠을 잤다. 아침인가? 어렴풋이 잠에서 깼는데 신랑이 머리를 쓸어주고, 이마를 두어 번 짚어 보더니 귀를 접었다, 폈다 해준다. 걱정이 담긴 손길이다. 박준 시인의 산문집『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에는 이마를 짚어주는 일에 한 짧은 단상이 담겨 있다.


산의 맨 이마를 덮어두는 구름처럼 요즘 나는 손으로 내 이마를 자주 짚어본다. 더러 미열을 앓는 날도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마에 손이 포개어질 때의 촉감은 손바닥 보다 이마에서 더 강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손으로 코를 만질 때와 손으로 어깨를 잡을 때 혹은 손으로 무릎을 긁을 때와는 달리 이마를 덮으며 손은 애써 감각을 양보하는 듯하다. 아마 이것은 오래된 습관이 만들어냈을 터이다. 대부분 우리의 이마를 짚어 오는 손은 자신 스스로의 것이 아니라 상대의 다정한 손인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고 거꾸로 자신의 손을 이마에 포갤 때 그 이마는 내 것이 아니라 애정을 갖고 있는 상대의 것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 박준『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100쪽 중에서




제주도로 떠나는 날에도 몸의 컨디션은 장담하기 힘들지만, 나를 안심시키는 사람과 함께라면 따듯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어느 아침의 일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vLRBqE3rRKU&list=PLa8akc3Kuq32Uow8rA8mVosGMklv4m8Oy&index=2&t=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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