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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꺼움 Mar 08. 2020

[오늘, 책] 시골도 백구도 처음입니다만_구성진

제주에서 온 남해

모든 이를 만족시키려 말고 어차피 모두가 만족할 수 없는 일인데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이 싫어지지 않게 우리가 그리고 싶은 색깔이 번지지 않게.
- 구성진 『시골도 백구도 처음입니다만』 (아마도 초록, 2019) 170쪽 중에서




  유독 지쳤던 날, 꾸역꾸역 일하고 있는데 카톡이 울렸다. 제주로 여행을 간 언니가 전송해 주는 사진들. "이제 책방 안으로 들어가고 있어." 사진에 다정한 말소리가 더해져 정말 함께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덕분에 마음까지 환기되어, 씩씩하게 보낸 어느 오후가 생각난다. 


  그리고 책방 무사에서 사 온 책 선물, 며칠 뒤 회사로 돌아온 언니는 제주에서 남해를 데려왔다. 서울에서 15년 동안 월급을 받으며 살다가, 불현듯 아무런 연고 없는 경남 남해로 내려가 자신만의 작은 일들을 꾸리고 있는 구성진 작가의 『시골도 백구도 처음입니다만』이다. 




  백구의 순한 눈빛이 잘 표현된 표지에서 어쩐지 바다 냄새가 나는듯했다. 책의 목차는 계절별로 이뤄져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지나가면서 작가는 남해에 서서히 정착하고, 아기 백구는 점점 자란다. 담담하고, 정갈한 에세이 한 편에 백구의 사진이 한 컷씩 담겨 있다. 백구의 성장일기인 동시에 새로운 터전에서 작가의 성장일기이다. 시골의 정겨움과 소박함. 이것이 일상이 되었을 때 느껴지는 고단함까지 진솔한 글에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  


일부러 공원을 찾지 않고 천천히 마을 이곳저곳을 걷기만 해도 수묵화 같았던 마음은 수채화처럼 조금씩 색깔이 덧입혀진다. 심심해서, 소화가 안 돼서, 뻐근해서, 바람이 좋아서, 햇살이 눈 부셔서, 저녁노을이 예뻐서, 구름이 멋있어서, 안개가 운치 있어서, 보슬비가 내려서, 흙냄새가 짙어서, 장맛비가 그쳐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우렁차서, 하늘이 하늘색이어서 등등 산책을 나설 핑계는 차고 넘친다.
- 구성진 『시골도 백구도 처음입니다만』 (아마도 초록, 2019) 26~27쪽 중에서


설레던 하루는 반복되고 지루한 일상이 되었으며, 풋풋하고 새롭던 신선함은 마비된 듯 잘 느껴지지 않았다. 소박하고 낭만을 쫓던 마음은 세월이 바래듯 점차 희미해졌다. 시골에서 직접 땀 흘려 가꾼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공간, 그 자체만으로 행복하지 않았다.
- 구성진 『시골도 백구도 처음입니다만』 (아마도 초록, 2019) 130쪽 중에서




  그렇게 일 년이 지나 다시, 봄이 되었고 책의 말미에는 독백 혹은 편지라는 제목으로 다섯 편의 짧은 글이 실려 있다. 함께하는 동반자에게 전하는 깊은 마음이 담긴 글을 읽고 있으니 온기가 스몄다. 책을 다 읽고, 표지를 여러 번 쓰다듬었다. 남해 어느 마을에 살고 있는 두 사람이 오래오래 사랑하길 바라며.


예쁘지? 스쳐 갈 순간을 잘 담아두는 우리가 되자. (···) 지금, 이 순간순간의 감정과 여운을 몸속에 마음속에 잘 담아 둔다면, 그 순간들이 모여 우리만의 것이 이루어질 거야.
- 구성진 『시골도 백구도 처음입니다만』 (아마도 초록, 2019) 174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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